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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Dec 14. 2024

결혼은 두발자전거 타기

엄마는 언제나 외길인생을 사신 분이었다.

마치 “흑과 백,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같은 질문을 항상 받는 사람처럼.



#1 듬직한 남편 vs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는 남편


엄마는 아빠 발톱을 깎아줬다.

나는 그걸 몇 해 전에 알고, 무척 놀람과 동시에 조금은 기괴하다고 느꼈다. 아내가 깎아주지 않으면 양말에 구멍이 나도록 발톱이 길어도 스스로 깎지 않는 남편이라니. 암에 걸려서도 남편 발톱을 깎아주고 있는 아내라니.


지금 둘이 장난치는 거지?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도 나는 믿을 수 없어 한번 더 확인했다. 엄마아빠는 평생 그렇게 살아왔다고 했다. 미쳤어? 엄만 내 손발톱은 깎아준 적 없잖아!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내가 스스로 깎았는데?

느이 아빠는 이렇게 해줘야 돼. 그게 엄마의 대답이었다.


아빠가 엄마를 의존하는 게 너무 피곤하다면서도 엄마는 아빠가 스스로 뭔가를 하도록 기다려주거나 내버려 두지 않았다.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항상 스스로 먼저 입안의 혀처럼 굴면서, 투덜댔다.

결혼 전에 아빠가 ‘나는 나만 바라보고 사랑해 줄 여자가 필요하다’ 고 했다고 한다. 엄만 그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살아보니 이토록 지밖에 모르는 인간일 줄은 몰랐다고 하셨다. “그러게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내가 결혼 전에 얘기했잖아.”라고 아빠가 대답하셨다나.


아빠가 밥 차려달라고 아기새처럼 엄마만 기다리고 있는 게 진저리 나게 지겹다고 하시면서도, 엄만 발목이 부러져 철심을 박고 집에 와서 미역국을 끓이고 잡채를 만들어 아빠 생신상을 차리셨다. 생일이 대체 뭐라고, 나가서 먹거나 배달시키던가 하는 옵션은 없이 그러고 있는 엄마도 답답하고, 마누라가 한 다리로 절뚝대며 차린 생일상을 당연하게 받아먹고 있는 아빠에게 화가 났다. 아빠가 식사를 하시다가 잡채 한올을 흘리셨는데, 엄마를 바라보셨다. (휴지 가져와라 이 뜻) 엄마가 눈빛을 읽고 절름발로 일어나시려는데, 엄마 뒤에서 매서운 눈초리로 아빠를 쳐다보고 있는 나를 보시고는 아빠가 어흠흠, 하시며 스스로 휴지를 가져오셨다.

그리고 사람들이 있을 때 엄마는 “다비아빠는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해.” 갑자기 이런 말로 깎아내렸다.


엄마는 아마도, 시댁식구들에게 철저히 다 맞추면서 자기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아빠가 자기를 의존할 때 행복한 것 같았다. 그러나 사실, 모두에게 사랑받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가. 자기가 남편을 온실 속 화초처럼 키워놓고, 내 남편은 왜 기대어 쉴 나무그늘이 없냐고 억울해하던 엄마.

아빠가 그렇게 의존적이 된 데엔 엄마의 영향도 있었을지 모른다.



#2 정결한 음식 vs 부정한 음식


부부간 관계뿐만 아니라, 건강 철학에서도 극단적인 모습을 반복했다. 엄마는 나한테 채식을 하라고, 100% 현미로만 밥을 지어먹으라고 했다. 나는 현미로만 밥을 지으면 속이 편하지 않은데도, 엄마는 그렇게 현미를 맹신하셨다. 그러다 미국 박사님을 만나더니 ‘현미 알레르기’라고 했다. 자기가 그래서 몸이 안 좋아진 거라고. 참 나. 약도 아닌데 음식이 사람 몸을 좋아지게 해 봐야 얼마나 좋아지게 하고, 코끼리만큼 먹은 것도 아닌데 또 나빠지게 해 봐야 얼마나 치명적이겠나.

맨날 무슨 디톡스, 디톡스. 망할 디톡스 하다가 27킬로가 빠졌다. 곁에서 지켜보는 나는 속이 탔다.

그것 봐, 아무거나 대충 골고루 먹었으면 그렇게 치우칠 일도 없잖아! 엄마 지금 빈대 잡다 초가삼간 다 태우게 생겼어! 라고 외치고 싶었다.


암에게 아무런 먹이도 주지 않겠다며 극단적인 식단을 고수하셨던 엄마는, 결국 자신도 아무것도 먹지 못해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했다. 신념이 육체를 지배한다. 해외에서 끝내 죽음에 이른 비건 인플루언서가 남 일 같지 않았다.



#3 영성과 일상 사이


엄마아빠의 모습을 기억해 보면, 점심때가 지나면 점심 먹었냐고 전화가 오고 저녁때가 되면 오늘은 몇 시쯤 퇴근한다는 전화가 왔다. 거의 매일 야근을 하셨기 때문에 열 시쯤 집에 오시면 늦은 저녁을 또 드셨는데, 식사를 하시면서 아빠는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런 소소한 부부의 대화를 하셨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런 건 ‘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서 만족하지 못하셨다. 나이가 들수록 그 부분은 엄마에게 한 맺힌 주제였는지, 나중엔 입만 열면 그 소릴 하셨다. ‘느이 아빠랑은 깊은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엄마 근데 있잖아, 목사인 이서방이랑 나도 맨날 가정예배드리고 그렇게 살지 않아. 부부가 집에서 그냥 소소한 이야기 하고 그러고 지내는 거지 뭐.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고 살걸? 인생 뭐 있간이” 하자, 엄마는 부부는 그런 게 아니라며 극구 부인하셨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빠가 외골수이긴 하셨어도 그렇게 ‘자폐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는지. 엄마가 장기간 집을 비우셨어도 친정집은 엄마가 계실 때처럼, 손길이 느껴지는 깔끔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엄마가 아무런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빠가 더 무기력한 남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도 든다. 내가 겪어보고, 주변 언니들에게 들어본 바, [남편]이라는 종자들은 원래 처음 몇 년은 로딩이 느리다. 연애할 땐 센스 충만하던 ‘남친’들은 결혼 후 ‘남편’이 되고 나면 눈치가 더럽게 없어진다. 그래서 남편이 남편다워지려면 그에게 아내의 필요를 보여주고, 그가 렌더링 할 시간을 주어야 되는데, 엄마는 그러지 않으셨다.


이서방이 OO이(첫째) 기저귀를 입혀놓으면 소변이 새고 옷도 항상 내복이 다 빠져나오고 엉망진창 이었는데, 애 배 좀 나온다고 안 죽는다고 나 스스로 계속 되뇌면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버려 두었더니, 이제 둘째는 나보다 이서방이 더 잘 재운다. 이렇게 되기까지 참 답답하고 그냥 내가 해버릴까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기다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집도 맨날 순식간에 도둑 든 집처럼 어지러 놓기 일쑤 더니, 이제는 분리수거도 하고 진짜 사람 됐지 뭐야.

넌지시 이런 말도 해봤으나 엄마는 아무것도 읽지 못하신 듯했다.

“아내가 남편을 필요로 할 때 남편이 없으면 그것만큼 뼈가 시린 일도 없어, 아빠. 엄마가 지금 말로 표현을 안 해도 아빠가 곁에 있어줘야 돼.” 아빠에게 이런 말을 드려보기도 했지만 아빠는 “엄마가 할 수 있대”라며 책임을 피하셨었다.




나는 두 분의 삶을 보면 언제나 안타까웠다. 악순환의 극을 치닫는 두 분을 보며 결혼은 답 없는 짓이니 나는 내 인생 스스로 책임지고 씩씩한 커리어우먼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결혼에 대한 로망도 없었고 기대도 없었다.

사람들은 흔히 결혼에 대해, 한 배를 탄 것에 비유하곤 한다. 동의한다. 깨진 방주를 타고 여기서 왜 비가 새냐며 서로 탓하고 화를 내면 침몰만이 남아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 배에 사랑하는 자녀가 함께 동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

서로 사랑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예의를 지켜라.

누군가는 뻔하다고 평하는 어느 강사님의 이 말씀이, 행복한 결혼생활의 비밀을 담고 있음을 나는 보았다. 결혼은 흑과 백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서로를 탓하지 않고, 균형을 찾으며 배워가는 과정이다. 결국 중요한 건 완벽한 배우자가 아니라,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부부는 영적으로 교감하고 함께 공동의 비전을 발견해야 하지만, 오늘 밥을 먹고 장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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