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가시던 날은 참 절묘한 날이었다.
내가 수술을 받은 지 8주가 딱 채워지던 날이었고, 사위의 여름 사역이 무사히 마무리된 뒤였다. 5월, 6월, 7월 계속 무수히 많은 고비가 있었고 그때마다 우리 부부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교육부서 사역과 장년부 단기선교 등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마다 여차직 하면 이목사만 따로 티켓을 끊어 귀국해야 할 상황이 생길지도 모름을 양해를 구하고 출발했다.
엄마가 너무 자주 고비가 있어, 아빠도 회사 대표님이 그냥 당분간 좀 쉬시는 게 회사에서도 일정 조율하는데 더 낫겠다며 휴가를 주셨다. 이제 그 휴가가 며칠 남지 않은 날이었다. 장례를 마치고 아빠는 다시 회사로 복귀하셨다.
그보다 일렀으면 상주가 자리를 지키기 곤란하고 또 그보다 늦었어도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워졌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알 수 없던 우울의 늪에서 이제는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을 치던 시기였다.
나는 몇 해 전부터 엄마와 연락을 하면 내가 며칠씩 울적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엄마 말속에 묘하게 묻어 나오는 독이 나를 병들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엄마와 나 사이에 자리 잡은 물리적 거리가 한몫을 했다. 실제로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조금씩 멀어졌고, 엄마와 감정적으로 멀어지니 내가 왠지 숨이 트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엄마는 내 구명보트면서 동시에 내 목을 저 깊은 바닷속으로 끌어들이는 연자맷돌이었다.
엄마는 나를 무엇보다 더 사랑한다면서, 나를 누구보다 상처 주고 박살 냈다. 나도 엄마를 정말 너무 많이 사랑했지만, 엄마 때문에 끔찍이도 고통스러울 때가 많았다.
엄마를 이렇게 느끼다니,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다 <모녀의 세계>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작가님은 엄마에게 묻고 싶었지만 이미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나는 아직 엄마가 살아계셨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나는 아직도 엄마가 너무 무서웠다. 그런 면에서 작가님이나 나나 비슷한 상황 아닌가 싶었다.
이전에는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엄마는 나이가 들수록 더 완고해지는 면이 많았다. 작은엄마도, 이모도, 시어머니도 모두 그 말씀을 하셨다. 겉에서 보는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는데, 나는 어땠겠나. 그저 엄마와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만이 내가 살아갈 방법이었다.
엄마가 노상 밉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순다섯 해만에 저물어버린 엄마의 삶이 참 안 됐다. 엄마가 그립기도 하다. 만약 아빠가 먼저 돌아가셨다면 엄마는 어땠을까? 엄마는 평생 노래를 부르던 대로 아빠가 없어져서 정말 신나서 훨훨 그렇게 살았을까? 그런 상상도 해본다. 아빠가 들어오지 않으면 새벽 두시고 세시고 잠을 이루지 못하던 엄마. 과연 아빠가 영영 없어지면 숙면을 취하셨을까?
나는 혼자 남은 아빠, 평생 엄마한테 무시당하며 기 못 펴고 산 아빠도 불쌍하고, 아빠의 지극한 사랑을 보지 못하고 혼자 그토록 외로워하다 결국 병으로 떠난 엄마도 정말 슬프고 아깝다.
이 모든 마음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이고 버무려져, 그야말로 내 속은 요즘 온통 엉망진창이다. 신신애 씨 노래 가사처럼, 세상이 아니라 내 속이 요지경 속이다 참말로.
가끔은 정말 물어보고 싶다.
엄마는 나한테 대체 왜, 그런 거짓말들을 했는지.
아니, 그냥 이 문제는 영원히 덮어두고 싶기도 하다. 영원히 모르는 게 나을 판도라의 상자 같다.
답답한 날도 있지만 그래도 이제 엄마가 없어서 왠지 그냥 이게 더 나은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적어도 이제는 우울하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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