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떠올리면 무엇보다 먼저 그 치열한 정직함이 생각난다. 엄마는 거짓말을 치가 떨리게 싫어했다. 그래서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해야 할 필요보다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냥 더 컸다. 어쩌다 한 번 거짓말을 해야 할 필요가 생기면 완전히 완벽한 거짓말을 만들어 내느라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언제 어떤 질문이 들어와 거짓말이 탄로 날지 모르니, 거짓말을 하기로 맘먹었을 땐 모든 상황과 대사를 완벽히 짜내야 했다. 작은 허점이라도 잡힐까 밤잠을 설치며 주요 과목 시험공부를 하듯이 달달 외웠다.
이런 거짓말, 어떤가? 생각만 해도 숨 막히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정직하게 살기로 했다. 엄마는 내게 그렇게 정직을 가르쳐 주었다.
글에서 몇 차례 언급했다시피,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해병대처럼 각 잡힌 아이였다. 엄마는 항상 죽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정말 곧 죽으러 갈 사람, 시한부 날을 받아놓은 사람처럼 나를 그렇게 키웠다.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려 나는 법을 가르치는 독수리처럼 말이다. 엄마는 내게 자립심을 길러주었다.
엄마는 정말로 나의 히어로이기도 했다. 엄마는 멋진 여자였다. 아무도 우리 엄마가 국졸임을 몰랐다. 엄마는 사용하는 언어도 취향도 정말로 고급진 데가 있었다. 나는 엄마를 본받고 싶었다. 엄마의 양육태도와 나의 기질이 시너지를 내, 나는 늘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으려 아등바등했었던 것 같다. 내가 모범생으로 사고 한번 치지 않고 자란 것은 내가 대단히 순종적이고 착한 아이여서가 아니라, 모든 선택의 순간에 엄마를 떠올리게 되었을 뿐이다.
엄마의 거짓말을 알게 되었어도, 나는 엄마를 히어로로, 나를 헌신적으로 사랑했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엄마를 향한 절절한 내 마음을 종이에 적어 입관할 때 엄마 품에 넣어드렸다. 엄마의 기준을 따라가기가 평생 버겁고 힘들었지만 또한 순수하게 엄마를 사랑했던 그 마음 그대로 미친 사람처럼 울기도 했다. 그리고 엄마를 모실 바다로 나가는 배 안에서 함께 해주신 사람들 앞에서 그 글을 읽었다. 마침내 엄마를 바다에 내려드리며, “잘 가!”라고 목청껏 외칠 때, 내 안에 어떤 오래된 사슬이 탁 하고 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슬이 끊어지는 듯한 자유와 공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렇게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일상을 이어가면서 나는 종종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아빠와 나를 그렇게 호령하던 엄마는 이제 없구나. 사람이 산다는 게 대체 무엇일까? 엄마는 누구였을까?
엄마는 아빠의 거짓을 지적하며 자기는 한 점 흠 없는 정직한 사람처럼 살았지만, 알고 보니 가장 모순된 사람이었다. 아빠가 출장을 가시면 각종 노트와 필기구를 많이 사 오곤 하셨는데, ‘저 인간은 못 배운 콤플렉스가 있어서 맨날 이딴거나 사 온다. 평생 책 한 줄도 안 읽으면서 이딴 건 왜 자꾸 사다가 집에 쌓아놓냐’며 비난했지만, 엄마 역시 같은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남편에게 아낌 받고 사랑받고 싶어 했지만 남편이 주는 사랑을 철저히 외면하며 살았다. 둘은 서로가 구사하는 사랑의 언어를 배우려 하지 않은 채, 당신이 하는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 없다며 평생을 다투다 마무리하고 말았다.
엄마는 그토록이나 완전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그래서 그렇게 날을 세웠지만 한 번도 완전할 수 없어서 고뇌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토록 자신을 채우고 싶어 하던 엄마가 이제는 예수님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기를, 마침내 온전함을 느끼고 있기를 바란다. 엄마는 불완전했지만 나에게 정직과 자립을 가르쳐주셨고, 나는 그 사랑을 기억하며 성장해가고 있다.
엄마는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예수님을 만났을까?
두 분이 조우했다면,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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