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부터 결혼을 할 때까지, 주변이 조용해지면 언제나 환청을 들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속삭임 혹은 떨쳐낼 수 없는 생각, 혹은 반복되는 망상 같은 건 아니었고, 그저 누군가 싸우는 소리들이었다. 다세대 주택에 살았으므로 누군가 싸울 만한 가능성은 늘 있었기에, 나는 오랫동안 그것이 환청 인지도 모르고 들었다. 그토록 긴 세월 만성적으로 환청을 듣던 내가 지금은 환청을 전혀 듣지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일까? 어떤 엄청난 명의를 만났던 것일까?
내가 환청을 듣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부모님의 싸우는 소리를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내 방 안에서, 벽 너머의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심장을 벌렁거리게 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으면 내 감정은 저 깊은 바닥으로 한없이 가라앉았다. 정말 듣기 싫었지만, 3M 귀마개로도 차단하기 어려웠다.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가 아주 큰 소리여서가 아니라, 내 감각이 그들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깊은 잠에서 바로 깨는 엄마처럼, 나는 부모님의 감정선에 매우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본능적으로 젖을 찾는 아이처럼, 나는 부모님의 평화로움과 포근함을 갈구했다.
환청을 듣지 않게 된 방법도 간단하다. 좋은 소리를 계속 넣어주었다. 나의 경우엔 귀에 이상이 없었고, 정신에도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자주 들은 소리를, 귀가 담았던 것뿐이었다. 실제 소리가 없을 때 마저도.
소리굽쇠를 한번 치면 한참 동안 뎅 하고 울리듯, 내 귀는 부모님의 싸움소리를 한동안 공명했다. 그 진동이 잦아들기 전에 또 그다음 진동이 밀려오고 밀려왔던 것이다.
마음에 담긴 것을 빼내는 데는 새로운 물을 넣어주면 된다는 이 원리를 깨닫기 전에도, 나는 비트가 빠르고 사운드가 강렬한 음악을 들으면 잡념이 없어지는 것 같아서 락발라드 노래를 자주 들었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음악이 멈추면 오히려 더 적막한 고요가 나를 감쌌고, 두세 건너 집쯤에서 누군가 또 여지없이 싸움을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부모님에게서 생활이 분리가 되면서 그리고 목사의 아내로 살게 되면서 나는 주일예배를 비롯 매일 새벽예배, 수요 저녁예배, 금요 철야예배 등등 모든 예배들을 빠지지 않고 참석하게 되었다. 예배에는 찬양이 빠지지 않는다. 청년 때와는 달리 사모로 사는 것은 교회를 너무 많이 가야 해서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미처 모르는 사이 그렇게 귀에 음악 소리가 매일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남편은 자주 나를 웃게 해 줬고, 나는 그의 유쾌한 농담을 사랑했다. 그리고 이내 아이들이 태어나게 되면서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 귀여운 옹알이 소리들이 내 일상을 채웠다.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옹알이와 찬양소리가 내 귀를 채울 때, 과거의 싸움 소리들은 자연스럽게 희미해졌다. 새롭고 따뜻한 소리들이 내 안의 어둠을 밀어냈다.
사람의 마음은 투명한 컵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마음속 컵에 맑은 물, 마시고 싶을 만큼 시원한 물로만 채우고 싶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구정물도 섞이고 흙탕물도 쏟아부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컵을 싹 설거지하고 뒤엎어 속엣것을 다 쏟아내고 싶지만, 삶은 그럴 수 없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 생은 망했다고 그냥 주저앉아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찾으러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안에 새로운 것을 담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 여행이라는 행동으로 시작되는 것이라고.
어쩌면 나는 훨씬 더 밝고 명랑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우울한 유년기를 지나 만성적인 통증에 시달려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자궁내막증과 선근증을 가지고서도 이 정도면, 본디 나는 얼마나 밝은 사람이었다는 거야? 하는 생각을 하면 앞으로 펼쳐질 인생길이 기대가 된다.
내 나이 마흔, 이제까지 정신없이 앞에 주어진 허들을 뛰어넘기에만 숨 가쁘게 살아온 길을 잠시 되돌아보는 나이가 되었다. 이십 대 때 같지 않고 푸석한 얼굴, 아이들을 낳느라 늘어진 뱃살 등을 보면 기분이 가라앉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 내게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느냐 묻는다면 나는 언제나 오늘이 가장 좋다고 대답하고 싶다. 내 지난날들은 더 나아지고자 하는 치열함의 기록들이니까. 그날들을 거쳐서 빚어진 지금의 내가 나는 꽤 마음에 든다.
앞으로도 나는 의도치 않게 구정물이 왕창 섞여버린 내 컵에 깨끗한 새 물을 계속 넣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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