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티를 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아빠에게 저쪽 방에서 조용히 말했다. “엄마 요즘 왜 이렇게 많이 울어?”
“엄마, 곧 할머니 돌아가실 것 같아서 걱정돼서 그래.” 남편의 차분한 대답이 들렸다. 아이는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그 대화를 듣는 순간 가슴이 무너졌다.
내가 그런 말을 해놓고 어떻게 울어.
명궁이 된 소녀는 어찌 된 일인지 자기가 명중시킨 화살에 본인도 맞은 듯했다. 울지도 못하고, 울지 않는 것도 아닌, 그런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장례를 마치고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무슨 서류가 그렇게 많이 필요하고, 어딜 그렇게 많이 가서 접수를 해야 하는지. 전 제적 등본과 초본을 떼어 엄마의 지나간 흔적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아 서둘러 주민센터를 나왔다. 주소지마다 집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 그리고 그 집마다 엄마가 어떻게 미싱을 놓고 일을 했었는지,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집 안팎을 쓸고 닦으셨는지 떠올렸다. “집이 깨끗해야 우리 가족 마음도 깨끗해진다”며 일 끝나면 쓸고 닦는 걸 쉬지 않으셨다. 부지런했던 우리 엄마.
두 분이 그토록 많이 싸우셨지만, 부모님의 다정한 모먼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억 속 우리 집의 저녁 마무리는 식사를 마치신 아빠가 거실에 앉으시면 엄마가 그 앞에 누우시고 아빠는 엄마 다리를 주물러 주셨다. 그렇게 두 분은 가물가물 잠이 드시곤 했다. 나도 그 옆에서 티브이 소리를 자장가 삼아 까무룩 잠들기도 했다. 다만 그 평온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 이 양반은 왜 꼭 아픈 데만 쏙 빼놓고 쓸데없는데만 뱅뱅 돌고 있어?!” 이렇게 엄마가 짜증을 내시면 아빠는 “골고루 해주려고 그래, 골고루!” 이렇게 맞받으시고, 나는 조용히 일어나 “안녕히 주무세요”하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아빠가 말주변이 없으셨지만 가끔 한 번씩 본질을 꿰뚫어버리는 농담을 하실 때, 엄마랑 나는 한참 동안 웃었다. 아빠의 농담이 터지는 날은, 그날이 하루종일 즐거웠던 기억. 자주 있지 않아서 더 소중했다.
쏴아아-
주민센터를 나서는데, 이제까지 꾸물꾸물하던 하늘이 갑자기 비를 억수같이 쏟아냈다. 나 대신 하늘이 울음을 터뜨려 주는 듯했다. 뭔가 후련한 것 같기도, 소리 내어 울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 대신 울어주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순식간에 정강이까지 다 젖고 비가 쏟아지는 소리밖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은 마치 내 마음의 응어리를 쓸어내리는 것 같았다.
엄마처럼, 나도 끝까지 내 가정을 지킬 것이다. 엄마가 살림을 쓸고 닦으셨던 것처럼, 나도 애정을 가지고 세간을 관리하며 내 삶을 쓸고 닦는다. 그리고 엄마와 다르게, 남편에게 예쁘게 말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여기를 좀 집중적으로 주물러 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해야지. 아니, 그냥 폼롤러 위에 나를 굴리는 게 낫겠다. 남편도 고단한 하루를 보냈을 텐데.
엄마는 내가 기억해 드리는 한 기억 속에 언제나 살아계신다. 엄마의 손맛을 추억하며, 나는 오늘도 반찬을 만들고 찌개를 끓인다. 사랑했지만 외로우셨던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기억하며 <행복을 깨는 사소한 법칙>들을 잊지 말고 살아야지.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 때문에 사는’ 삶을 살지 않을 테다. 오롯이 내 삶을 살다 가야지. 우리는 사람이기에, 부족한 점이 드러날 테고 남편 때문에 속상해지는 날도 생기겠지. 그러나 그 답답함은 송정 앞바다에 쏟아내고 와야겠다. 절대로, 아이에게 하소연하지 말아야지.
지지고 볶고 달라붙어 있으며 서로를 할퀴기보다는 그냥 조용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야지. 때로 엄마가 이기적인 건,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발돋움임을 아이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