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한테 이 문자가 오면 그때부터 나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대체 무슨 폭탄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불안하고 초조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냥 지금 말해달라고 하기엔 그것 또한 두렵고, 내가 알려달라고 한다고 해줄 엄마도 아니었다.
“네가 아기 때부터 엄마한테 뭔가 떼써서 통과시켰던 적이 한 번도 없어. 엄마는 일관성이 있는 사람이거든.” 엄마가 늘 자기 입으로 자랑스럽게 하셨던 말씀이다.
엄마가 할 얘기 있으니까 여기 앉아봐라 하셨을 때, 별 얘기가 아니었던 적은 없었다. 상상도 못 해본 이야기들이었다. 대부분 이런 말들이었다.
내가 오늘 낮에 네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왔는데, 글쎄 선생님이 너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 아냐? 네가 너무 싸가지가 없고 어쩌고 저쩌고...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담임선생님이 나를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 당시에 나는 엄마의 그 말들을 모두 진실로 믿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것이, 보통 자녀의 학교에 갈 일이 있으면 오늘 엄마 학교 간다, 교무실은 어디에 있느냐 너네 교실은 어디쯤 있느냐 하고 전날 저녁이나 아침에 대화하게 되는 게 보통이다. 쉬는 시간은 몇 시쯤인지, 그래서 되도록 학교까지 간 김에 아이 얼굴도 한번 보고 그러고 오게 마련인데 우리 엄마는 내게 그런 질문을 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늘 암행어사처럼 불시에 방문하고, 비통한 소식을 전했다. 엄마를 학교에서 본 적도, 엄마가 다녀가셨다는 이야기를 담임선생님께 들은 적도 없다.
이제와 생각해보니,그런 말을 했다고 엄마가 내게 전한 선생님은 항상 공교롭게도 내가 많이 따르는 선생님들 이었다. 내가 없는 곳에서 내 험담을 한 선생님께 나는 큰 배신감을 느꼈고, 그런 오해는 결국 내가 선생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무너뜨리게 만들었다. 대부분 모든 선생님께 고루 좋은 평을 받았지만 연말까지따르고신뢰하며 특별히관계를 유지한 선생님은 딱히없이 그렇게 학창 시절을 마무리했다.
그 외에도 나는 엄마로 인해 사랑했던 관계가 깨지는 경험을 반복해 왔음을,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깨닫게 됐다. 교회를 정말 옮기기 싫었는데도 엄마는 “주님의 뜻”이라며 강행했고 나는 지금도 대체 어떤 교회를 나의 모교회라고 말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그 교회에서의 추억은 주님의 뜻이라는 엄마의 말 한마디에 파괴되었다. 주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나도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은 그때 왜 내게는 말씀을 해주지 않으셨을까?
기억을 되짚어보니 내가 특별히 사랑했던 사람들마다, 엄마가 돌연 다른 이야기를 했고 나는 너무나 실망하고 말았던 경험들이 무수히 많았다. 그렇게 관계가 깨어진 뒤, 얼마간 시간이 흘러 또 엄마가 “주님이 말씀하셨다”며 자기만 관계를 회복하고 나타났다. 나는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는 것이 그 무엇보다 어려운 사람이다. 그렇게 엄마에 의해 박살 난 관계들은 오직 엄마를 허브 삼아 재개통되곤 했다.
엄마는 어쩌면 자기를 중심으로 조각보처럼 조각조각난 관계를 만들어야 편안한 사람 같다는 생각을,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생각하게 되던 참이었다.
엄마의 죽음 이후, 내 삶 자체가 뿌리째 뒤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입장에서 공감하며 듣는다. 그래, 엄마란 그런 것이지. 엄마는 하해와 같은, 갚아도 갚아도 다 못 갚을 사랑을 주신,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그런 영원한 마음의 동산 같은 곳이지_ 하며 말이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엄마의 부재로 인해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쇼가 끝나서 허망한 것이다. 40년간의 트루먼쇼가 갑자기 끝나버렸다.그런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거짓이었는지 알 수가 없기에, 갑자기 모든 세계관이 뒤죽박죽 엉망진창, 그야말로 혼돈이 깊고 흑암이 가득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세상에서 산 거야?
내 모든 세계가 흔들리고 있어 여보
사람들이 그런 일은 없었대
그런데, 엄마가 평생 나한테 했던 말 그리고 우리 엄마니까 내가 믿고 싶은 말들이 거짓말 같고, 증오하던 가족들의 말이 진실로 믿어진다는 거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어?
나 너무 마음이 아파. 나 어쩌면 좋아 여보
내가 많이 좋아했던 사람들을 엄마에 의해서 관계가 깨진 경험이 너무너무 너무나 많아.
엄마는 왜 그런 거짓말을 했지? 대체 무엇이 남지?
나는 어디까지 진실로 알아야 할까?
엄마는 내 소소한 행복들을 모두 빼앗아 갔어
난 세뱃돈을 항상 눈치껏 엄마에게 상납했어
나는 외동이니까 많이 받아도 괜찮대
엄마가 조카들한테 세뱃돈을 그렇게 많이 주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항상 쪼들려하니까 나는 엄마가 힘든 게 싫으니까 그냥 다 줬어. 그래서 세뱃돈으로 뭐 사본 적이 없어 나는.
시어머니가 나한테 잘해 주는 건 나를 예뻐하셔서가 아니고 자기 아들이 돈을 못 버니까 그런 것뿐이래
밑도 끝도 없이 시작한 말을, 남편은 세상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그래 그랬구나 그랬구나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어버버해도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내용을 읽어주었다. 이 사람은 옛날에도 이래서 내가 덜컥 결혼을 결심하게 만들더니, 이토록 한결같아서, 정말 안심된다. 남편에게 나를 쏟아내면서도 이런 내게 실망하지는 않을까, 이제 이 사람에게도 버림받으면 어떡하나 두려웠지만 내가 그토록 불안해하는 순간에도 그의 눈빛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엄마와 나를 모두 잘 아는 사람이 이해해 주는 것이 정말로 큰 위로가 되었다. 그저 나를 달래기 위해 덮어놓고 다독이는 것이 아니기에, 힘이 있었다.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내가 왜 그렇게 평생 마음에 관심이 많았는지.
한 날은 애착유형테스트가 유행이라기에, 테스트를 해본 적이 있었다. 결과는 다소 놀라웠다. 혼란형(자기부정-타인부정)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느꼈기에, 남편에게 링크를 보내 테스트를 해보게 했다. 남편은 안정형(자기긍정- 타인긍정)이 나왔다고 했다. 어쩜, 우린 MBTI에 이어 이런 것까지 완전 반대에 있어? 이번엔 엄마에게 링크를 보냈다. 엄마는 회피형(자기긍정-타인부정)이라고 했다.
“엄마, 우리 부부는 정말 로또인가 봐. 이런 거 할 때마다 맞는 게 하나도 없어! 너무 신기하지 않아?”
내 말을 듣고 엄마가 하는 말.
“뭐, 다 긍정이라고 좋기만 한 줄 알아? 이서방도 틀린 거 많아!”
왜 이렇게 날 선 반응인지, 그리고 솔직히, 지금 엄마가 보이는 반응 자체가 자기는 맞고 남은 틀린, 사고관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으나 그러게, 하며 입을 다물었다.
엄마는 정말 내 멘탈을 털어가는, 엄여인 같은 사람일까? 그렇게 해서 무얼 얻고자 했을까? 내 질문에,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은 잠이 잘 오는 약을 처방해 주셨다. 저녁이 되면 잠이 오든 안 오든 이걸 먹으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약을 먹어도 여전히 잠을 못 이루기도 했고, 한낮에도 죽은 사람처럼 자기도 했다.
로또 같은 사람. 어쩌다 우리가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을까? 그는 나와 이토록 맞지 않는 로또가 아니라, 나를 붙드는 잭팟이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남편이 제일 많이 해준 말이다. 아니, 나는 아직도 가끔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