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던 해에는가요무대가 첫 방송을 시작했고, 그 해에만 지하철 노선이 무려 3개 노선이 개통을 했다. 한강에 대교가 두 개가 완공되었고 여의도에 서울의 랜드마크라 할 만한 고층 건물이 들어섰으며, 비행기가 떨어지는 참사가 꽤나 빈번하던 시절이었다.
봄부터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던 그 해 여름의 최고 기온은 35.4도로 관측되었다.
내가 태어나던 날, 임신중독증이 몹시 심했던 엄마는 생사의 기로에 서 계셨다. 무시무시한 부종 때문에 얼굴과 몸이 임신 전보다 두 배는 커져있었고 혈압도 터질 듯이 높았다고 한다.
임신 기간 내내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보내던 엄마는 분만과정조차 순탄치 않았다. 예정일이 지났지만 출산의 징후가 없이 잠잠히 흘러가던 한여름의 어느 날, 갑자기 양수가 터지면서 순식간에 양수가 다 빠져 배가 홀쭉해져버렸다고 한다. 그 상태로 병원에 도착해 진통이 진행됐지만, 아기는 양수가 먼저 다 빠져나가 버린 뱃속에서 무려 15시간이 더 지나도 나오지 못했고, 시시각각 호흡과 맥박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기는 좀처럼 골반을 통과해서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제왕절개로 태어났고, 호흡부전으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고 한다.
'양수가 먼저 터지면 그때부터 지옥이 펼쳐지는 거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내 머릿속에는 항상 그 말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나도 양수부터 먼저 뻥 터지고 말았다.
'하, 엄마가 양수 터지면 아기 낳는 거 힘들어진다고 했는데....'
나도 엄마처럼 난산으로 이어질 까봐 걱정스럽게 분만이 시작됐다.
하지만 천만다행이게도 나는 의사 선생님께서 부라보를 외치실 만큼 신의 골반이었고, 초산임에도 네 시간 반 만에 아기를 낳아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그렇게 무사히 첫 아이를 낳고, 순산 소식을 시댁과 친정에 알렸다.
병실에 올라와 아침으로 들어온 첫 미역국을 한 술 뜨고 있는데, 띠링하고 입출금알람이 울렸다. 시아버님이 우리 며느리 밤새 아기 낳느라 너무 애썼다며 금일봉을 보내주신 거였다.
'남편이랑 내가 사랑해서 서로 협의하에 아기를 가지고 낳은 건데 왜 내가 시댁에서 돈을 받아야 하지?'
물론, 당연히 축하해서, 몸조리하면서 먹고 싶은 것도 사 먹고 이것저것 필요한 곳에 쓰라고 주신 것인 줄 알았지만 기분이 이상해졌다. 상상도 못 한 돈이었기 때문에 다른 집들도 이러는 건지 검색을 해봤다.
세상에, 인터넷 세상 속 가임기 여자들의 엄청난 사상과 논리들에 입이 떡 벌어졌다.
자기 친구 누구는 첫 애 낳고 차를 받았네, 명품가방을 받았네 하는데 본인은 시댁에서 이것밖에 안 줘서 서운하다는 둥, 별별 의견들이 다 있었다. 문화충격이었다.
이것이 정녕 남녀평등을 외치는 세대풍조 가운데 교육받고 자라온 여성들이 맞는가?
내가 이걸 넙죽 받으면 스스로 현대판 씨받이로 전락해 버리는 건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다들 이런 거 받고 사는데 나만 순진한 바보같이 사랑 운운하며 있는 건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이걸 시댁에서가 아니라 친정부모님이 내 남편에게 주셨다고 생각했을 때 과하지 않다고 생각이 드는 만큼만, 나를 배려해 주시고 아껴주시는 시부모님의 그 사랑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자.
#감사합니다
#저 돈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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