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이다. 1만 시간은 매일 3시간씩 훈련할 경우 약 10년, 하루 10시간씩 투자할 경우 3년이 걸리는 시간의 양이다.
'일만 시간의 법칙'은 1993년 미국 콜로라도 대학교의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이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와 아마추어 연주자 간 실력 차이는 대부분 연주 시간에서 비롯된 것이며, 우수한 집단은 연습 시간이 1만 시간 이상이었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
나는 이 말을 직장에서 처음 들었는데, 초보 시절 실수하고 풀 죽어 자책하던 내게 선배가 해준 말이었다.
"괜찮아 다비씨. 재능보다도 더 사람을 다듬어가고 완벽하게 하는 건 거기에 들인 시간이야.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은 투자해야 된대. 다비씨가 실수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 너무 걱정 말고 이제부터 어떻게 수습할지를 생각합시다."
나는 요리를 할 때 그다지 즐겁지도 않고 흥미도 없는데, 주변 사람들은 자꾸 내게 '넌 요리를 잘할 거야'라고 말했다. 친정 엄마가 요리를 그렇게 잘하시는데 너 또한 요리를 잘하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했다. 내가 아니라고 하면 '먹어본 놈이 그 맛을 찾아서 결국 요리도 잘하게 되는 거야'라고 하며 내가 요리를 잘할 거라는 그들만의 확신을 내게 주장했다.
지인들의 이같이 굳건한 많은 믿음에도 불구하고, 내 요리는 쉽게 늘지 않았다.
무언가 하나씩 만들어내면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나 지치고, 재미없고, 힘들다고 느껴졌다는 게 문제였다.
한 시간 동안 복닥대어 만든 것은 십 분이면 사라졌다.
맛있다는 대답은 그냥 만든 사람인 내 앞에서 보이는 최소한의 성의일 뿐 진심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사실과 상관없이 내가 노상 그렇게 생각한다는 데서 비극이 시작된다) 주변이 산뜻하게 정리되어 있는 상태를 매우 사랑하는 내게 ㅡ 실내 공기도 탁해지고 물은 사방팔방 튀어대고, 먹고 뒤돌아보면 싱크대 가득 설거지감이 쌓이는 일의 반복인 요리 활동은 스트레스 자체였다.
일련의 요리 활동 과정들이 전혀 성취감이 들지 않았다.
결혼 전 명절 때 우리 집에 와서 전을 나보다 더 예쁘게 부치며, 태우지 않고 전을 굽는 불조절의 요령을 가르쳐주던 자상한 오빠는 결혼 후에도 그 인내심과 자상한 텐션을 유지하며 늘 "맛있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다" 말해줄 뿐 주방에는 결단코 들어오지 않았다.
친정엄마에게서 본 것 많고 먹어본 것 많은 경험은 요리의 질을 높이는 게 아니라 상차림에 관한 기준을 높였다. 만들어 낼 수 있는 케파에 비해 한 상에 올리고 싶은 가짓수가 과했다.
삼겹살을 구워 먹는 날에는 쌈채소도 씻어야지, 기름장 쌈장 골고루 준비해야지, 고슬고슬 윤기 나는 밥도 꼭 압력솥에 지어야지, 파절이도 올려야지, 아 참참! 된찌도 놓칠 수 없지!!
그런데 이 식단표엔 큰 문제가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리 맛나다는 된장을 받아다가 찌개를 해도, 끓이면서 간을 보면 똥맛이 나서 설탕을 쏟아붓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완성되고 먹어보면 이게 도무지 무슨 맛인지, 마녀의 수프 같은 맛이 났다.
내 기준에서 된장찌개 냄비에 들어가는 밑재료들이 너무 엉성하다 보니
(다진 마늘 고춧가루 새우젓 등등 이것저것 막 들어가야 안심된다고요)
왠지 불안해서 자꾸 중간에 간을 봤는데, 그러면 이게 무슨 맛인지 모르겠고 자꾸 똥맛이 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매번 된찌를 끓일 때마다 설탕 퍼붓기를 멈출 수 없었고, 결과는 항상 대폭망이었다. 남편이 그런 일로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라며, 대신 넌 미역국이 기가 막히고 김치찜도 수준급이니, 잘하는 메뉴를 집에서 만들어 먹자고 했다. 그냥 비비고에서 된찌를 사 먹거나 아니면 된장찌개는 집에서 일상으로 끓이는 국이 아닌 거라고 생각하고, 가끔 고깃집에 갔을 때나 시켜 먹는 메뉴라고 생각하자고 했다.
차차 주부 경력이 늘어가면서, 나는 뜨거운 상태에서는 맛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혀로 간을 보는 것보다 코로 냄새를 맡아보고 맛을 어림잡아 양념을 넣는 게 훨씬 더 맛있는 음식으로 완성되더라는 걸 체득하고 나서야 음식 맛이 일정하게 나오게 됐다.
그리고 문제의 된장찌개는
<믿음으로 끓이는 국>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는데, 무릇 넣을 재료들을 다 넣고 났으면 이젠 맛있게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보글보글 끓이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세월이 십 년이 걸렸다.
과연 일만 시간의 법칙인 것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엄마 오늘 된찌야? 신난다!" 하며 반색을 하게 되었다. 엄마표 된장찌개가 갈빗집 된찌보다 맛있다며 밥 한 그릇 더! 를 외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ㅎㅎ
열심히 집중해서 최선을 다해서 일만 시간을 보내야만 실력이 쌓이는 건 줄 알았는데, 마지못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보낸 일만 시간도 소용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늘 격려하는 태도를 유지하며 결코 주방에 들어오지 않으시고 저를 기다려준 뚠뚠씨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당신은 천생 양육자 맞네
#인내심 최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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