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생존수영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고,아이들에게는 수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가르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물가에 평생 가지 않는다면 빠질 일도 없는 거 아닐까?' 하며 안위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수영 실력이 늘어가는 모습, 남편과 두 아들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데서 만족했다.
그러다 몇 달 전에 급격히 내 삶에 새로운 파동이 일면서, 또 한 번 죽음에 관해 생각했다. 우리 근처에 늘 죽음은 배회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지난번 죽음의 위기를 느꼈을 때, 나는 이대로 죽으면 캠핑 한 번 못 가본 게 너무 아쉬울 것 같다고 생각했고, 29박 30일의 대학병원 생활을 마치고 열흘이 채 지나지 않아 친정엄마의 걱정과 우려를 무릅쓴 채 생애 첫 캠핑을 나서고야 말았었다. 가서는 세상 귀하게만 자란 여자처럼, 의자도 텐트도 하나 펴거나 접지 않고, 남편이 차려준 자리에 그림처럼 곱게 앉아 타오르는 모닥불을 하염없이 바라봤었다.
만 나이 서른여덟에 석 달마다 요관스텐트를 교체해야 될 운명에 던져지고 나니, 이제껏 이런저런 이유로 도전하지 않았던 그 모든 것들이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었고, 그 깨달음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나를 움직이게 했다.
나는 언제나 안전제일주의라서, 안 될 것 같은 일에는 애당초 도전도 잘 하지 않는다. 철저히 분석하고, 판단하여, 될 일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올인하고, 되는 성과를 반드시 이끌어내는 삶을 살아왔다.
이런저런 이유로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은 꿈도 접어두기만 했었다. 그런데 문득 도전하고 싶어졌다. 그치만 사실 될 것 같지도 않았고 설레발은 다 쳐놨는데 작가심사 과정에서 통과가 안되면 애들 보기에 창피할 것도 같았지만 그 과정 자체에 나를 한 번 던져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러더니 다음 메인에 글이 다섯 개나 연달아 노출이 되는 행운을 누렸다. [완독률 높은 브런치북]에 내 브런치북이 순위를 다투며 오르락내리락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기세를 몰아 브런치 공모전에도 응모했다. (이건 상금 타면 뭐에 쓸까 계획을 다 세워놨는데 당당히 떨어졌다 아하하)
이 작은 날갯짓은 - 별 일이 없으면 열흘이고 보름이고 집 밖에 나가질 않는 나에게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집 밖으로, 그리고 내 내부에서 외부로 시선을 돌리게 했고, 일생 한 번도 도전해 본 적 없었던 <수영>에 도전을 하게 됐다.
"어?? 당신 진짜 할 거야?
진짜지? 나 진짜 수영장 알아본다?"
하고 남편이 몇 차례나 확인을 했더랬다.
첫 수업을 잊을 수 없다.
허리춤도 오지 않는 유아풀에서, 세상 안정적인 자세로, 두 손으론 벽을 꼭 붙잡고, 정수리까지 머리를 푸욱 - 담그지 않았고, 갖춰 쓴 물안경이 머쓱할 만큼 코끝만 겨우 물에 담갔는데 숨이 어찌나 차고 겁이 나는지.. 산소가 부족하여 쓰러질 지경이었다. 들썩이는 어깨만 보면 뭐어, 이건 천 미터는 전력으로 헤엄쳐 다녀온 선수 같았다.
남들이 볼 때는 우스운 실력이었겠지만 나는 그렇게 갈 때마다 눈부시게 계단식 성장을 했고 (스텐트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한 달에 네댓 번 감ㅋㅋㅋ) 수영을 다녀온 날은 집에 들어서면서 위풍당당하게 "엄마 오늘도 좡놘아니었어어~ 엄마 완전 수영천재다~! 오늘 한 시간 동안 가장 많이 실력 향상하고 온 사람이 바로 엄마야!! 내년 여름에 기대해 너희들, 엄마가 수영으로 다 정리해 준다" 개선장군처럼 아이들에게 뽐내기도 했다.
게으름이 이기려고 하는 어떤 날에는 아이들이 먼저 "엄마 수영천잰데 오늘 안 가게? 오늘도 가서 유아풀 접수해야지이! 엄마, 사실 나도 아침마다 학교 가기 싫은데, 일단 학교 가잖아? 그럼 또 재밌어서 하루 즐겁게 보내게 돼. 그러니까 엄마도 얼른 힘내서 갔다 와!!"하고 초등학교 2년 다니며 얻은 깊은 경험에서 우러난 아낌없는 조언과 응원을 보내주었다.
발차기를 하면 곧바로 혈뇨가 나오는 바람에 수영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나는 오리발을 신고 맨 뒷줄에서, 그렇게 차곡차곡 수영을 배웠다. 그러다 지난주부터는 접영을 하는데, 오늘은 많이 속상했다. 중간에 그냥 집에 가고 싶어지는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모른다.
자꾸 날으는 참치처럼 수면을 날아 철푸덕 하고 입수를 하니 물을 안 먹었는데 코는 매워 죽겠고, 한번 그렇게 물 위로 도약했다가 들어가면 수영장 바닥이 코앞에 다가올 만큼 깊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참으로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는 영법이었다.
물 밖으로 나왔을 찰나에 숨을 쉬라는데 내가 이토록 박치인 줄 꿈에도 몰랐다. 물 밖에 고개만 빼꼼 나왔다 들어갈 뿐 박자를 놓쳐서 숨은 못 쉬고, 그냥 잠영이나 매한가지였다. 뭐, 이대로라면 폐활량이 엄청 늘 것 같기는 했다. 수영이 아니라 프리다이빙 반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수술 앞두고 체력 올리겠다는 목적 하나만큼은 확실히 되고 있는 듯했다.
허리도 너무 힘들고 온몸이 무거워지는데, 선생님은 자꾸 출발하라고 하시고, 아 나도 잘하고 싶다 아아!!!! 잘하고 싶다고!!! 이러는 중에 문득, 사실 나는 접영을 차근히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들며 화가 났다. 선생님은 왜 가르쳐주지도 않으시고 냅다 하라고 하시며 자꾸 지적만 하시는가.
다른 때는 무한뺑뺑이 돌더니만 오늘 수업은 왜 끝번까지 다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지, 구경 났어? 싶고 여러 가지 생각에 맘이 복잡하고.. 박자 못 타는 몸은 더 한심하고 복잡했다.
그러다 호흡 고르며 한 바퀴 걷고 오라는 때에 우리 레인 1번을 맡고 계신 남자분이 내게 다가와서 "왜 그래, 괜찮아?" 하고 말을 붙였다.
"당신이 뭘 알아, 당신은 몸 자체가 조오련이라 내 맘 몰라. 하고 싶어도 안 되는 나를 어떻게 이해해. 말 시키지 마아"하고 괜히 골을 부렸다. 그러다 눈물이 왈칵 나왔다.
수영장은 내 눈물 아니어도 물 천지라 정말 다행이었다. 수경 안이 눈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에라이, 어차피 난시도 심한데 오늘 파티다 파티 ㅋㅋㅋ
내가 이렇게 수영에 진심이 될 줄, 몰랐다.
뭐라도 좋으니 아무거나 일단 하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였고 3년 전 수술 후 패혈증이 왔을 때, 환자 본인의 체력이 너무 약해도 수술부위가 회복이 잘 안 되고 쉬이 염증으로 번지고 만다는 말을 들었기에 이번 수술은 범위도 과정도 훨씬 더 복잡하니 그런 일은 다시없어야 한다는 것뿐, 다른 건 없었다. 물 밖에선 중력을 받으니까 훨씬 더 저강도로 조금만 뭘 해도 혈뇨가 나오고 통증이 있어서 물속에서 하는 종목을 고른 참이었다. 그저 생존수영만 할 줄 알게 된다면 나는 학습목표 다 이뤘다고 생각했다. 지난 휴가 때 스노클링 하면서 코앞에 있던 고래를 잘 봤어야 했는데 물에 고개를 넣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무서워서 고래를 못 봤다는 게 아쉬워서 다음엔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도가 목표였었다.
나는 초심을 잃었다.
접영 그깟게 뭐라고. 울긴 왜 울어.
너 물에 빠지면 1번 아저씨가 구해줄 거니까 걱정 말아.
#그가 물살을 가르고 출발하면
#우와아 잘한다_ 사람들이 감탄을 해요
#후훗, 그 사람이 바로 내 남편이에요
#우리 집 향유고래
#뱃속에 부레 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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