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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Oct 21. 2023

우리 엄마의 하얀 거짓말

넌 짧은 머리가 예뻐, 엄마의 그 말이 진짠 줄 믿었었다

지금의 풍채와는 사뭇 대조적으로, 나는 어릴 때 무척 작고 마른 아이였다.

소아과에 갈 일이 많았는데,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실 한쪽 벽에 붙어있는 [표준성장발육표]를 보면

내 키와 몸무게는 항상 두 살 작은 연령에 해당했었던 게 기억난다.


그때의 나는 체육 시간에 운동장 세 바퀴 도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다.

구령대에서 첫 번째 축구골대를 가면 벌써 목구멍에서 피 맛이 났고, 반대쪽 축구골대에 다다르면 하늘색이 노랗게 변해갔다. (아기를 낳을 때도 멀쩡했던 하늘 색이 그때는 참 자주 변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손톱 발톱은 물론 머리카락이 정말 잘 안 자랐다.

친구들이 허리까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모습을 보면 그렇게 부럽고 좋아 보였다. 점심시간에 밥 먹고 난 뒤 공기놀이 같은 걸 하면서 친구의 길고 탐스러운 머리칼을 가만가만 쓸어보곤 했다. (보기만 해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아서 고무줄 놀이는 엄두도 못 냈다)


고등학생쯤 되니 머리가 자라기 시작했다.

조금씩 길어져, 쇄골을 지나고 가슴팍 아래까지 드리워졌다.

거울 속에 비친 긴 머리의 나. 멋졌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아무래도 넌 짧은 머리가 더 어울려.


엄마는 내 속도 모르고 자꾸 짧은 헤어스타일을 강추하셨다.

1년 반 정도 꾸역꾸역 미루고 미루다, 결국 엄마의 추천대로 짧은 머리로 바꾸었다. 뭐, 이 스타일도 나쁘지 않았지만 난생 처음 가져봤던 긴 머리에 대한 사랑이 가슴 한 켠에 아쉬움으로 남았다.



결혼을 하고 나서, 나는 다시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손톱을 나흘마다 깎게 됐다.

먹은 게 다 손톱 발톱 머리로만 가게 됐나 보다.

미용실 원장님도 내가 갈 때마다 "다비씨 머리 진짜 빨리 자란다"며 가위질을 즐겁고도 경쾌하게 하셨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숨겨두었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직접 청소하고 살림을 해 보니

머리가 길어지자 바닥이 상상초월 더러워졌다.

줍고 또 줍고 청소기를 돌리고 또 돌려도

뒤돌아서면 바닥에 머리카락이 있었다.


엄마가 나더러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린다고 했던 건
청소하기 힘들어서 했던 하얀 거짓말 같아.


깔끔하신 이여사 성격에 그러고도 남음이 있음이다.




#합리적 의심

#이제야 밝혀지

#엄마의 거짓

#그래도 사랑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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