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다비 Oct 16. 2023

그녀와 나 사이엔 희귀병이 있을 뿐이었다

성공한 덕후와 최애 이야기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우리는 우리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날씨, 음악, 영화, 커피, 공통으로 아는 누군가.
그리고 관계가 진행이 되면서 우리는 점점 '나'를 이야기 속에 싣는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얼 좋아하고, 무얼 싫어하고, 어떤 꿈을 꾸고, 어떤 것을 원하는지.
가장 표피적이고 긍정적이며, 확실하고 자신 있는 것에서 시작해서 점점 더 나의 근원적 불안과 욕망에 맞닿은 얘기까지.
그러는 동안 우리는 상대를 은연중에 실험해 보게 된다.
이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그러면 안 되는 건지.
더 깊고 진지하며 근본적인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사랑을 그리는 심리 치유노트, 심리학 사랑에 빠지다>



그녀와 나 사이엔 공통으로 아는 누군가가 없었다.

희귀병이 있었을 뿐이었다.





사랑하는 친구가 투석을 앞둔 시점에, 나는 절박했다. 같이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도 그랬고, 나이가 나랑 이태도 차이 나지 않는 친구의 삶 자체가 이대로 사그러드는 건 아닐까 너무 걱정됐다. 나는 무작정 책을 샀으나 답을 얻지 못했고 카페에서도 만족할 답을 찾을 수 없어, 정처 없이 헤매다 일본 환우들이 모여있는 곳까지도 흘러갔었다.


그녀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내 사랑하는 친구도 이제 앞으로 이런 일을 겪게 되는 걸까 싶었다.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안도감도 들었다. 생각보다 이런 일은 있구나, 그럼에도 이렇게 씩씩하게 해낼 수 있구나.

의료인이 기술한 책에서는 읽을 수 없는 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렇게 글을 몇 개 읽다, 한날에 다 읽지 못할 것 같아 구독을 했다. 생각날 때마다 그녀의 공간에 들어가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점차 희귀병보다 그녀 자체가 알고 싶어졌다. 그녀가 발행한 모든 글을 읽기로 했다. 스크롤을 계속 내려 1번 발행한 글부터 뚜벅뚜벅 읽기 시작했다. 읽어나가다 보니 첨에 읽었었던 글들이 다시 나왔지만 그냥 또 읽었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멋진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고민을 하다, 용기 내어 댓글을 달았다. 김창옥 씨 토크콘서트에 접수할 법한 사연을, 그녀의 댓글창에 써 내려갔다.


살림도 해야 하고 육아도 해야 하고 당시 큰 수술을 한 내 몸도 회복해야 해서 자주 들어가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번 들어가면 오래 머무르며 그녀의 글을 마음에 담았다.

브런치에서 여러 작가들의 글을 읽어왔었지만 앱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녀가 내 댓글에 답장을 남겨주었다는 거를 아주 늦게 확인했다. 그녀는 내 안부를 물어주었고 친구는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내가 다른 글에 남긴 이야기들까지도 기억해서 다정한 답장을 보내주었다.

글에서 읽은 그녀는 매우 활발한 활동가였는데, 나를 세세히 기억해 주다니, 기쁨이요 감동포인트였다.





그녀는 무척 생각이 깊고 다정하며 밝은 사람이었지만

때로 현실 앞에 절망했고 삶을 마감하고 싶어 했다.


글에서 드러난 나이를 어림잡아 헤아려보니 나보다 어렸다. 그녀가 부디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됐다. 

이런 좋은 글을 공짜로 읽고 구독료도 내지 않다니, 내가 너무 염치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비밀댓글 기능이 없어서 어쩔까 둘러보다가, 작가에게 제안하기 기능을 발견했다. 출판사 관계자나 작가에게 강연요청을 드릴 때 쓰라고 있는 창구 같았다.

가끔씩 회까닥의 추진력을 보이는 내 안의 덕후가, 어서 정연씨에게 친구가 되자고 제안하지 않고 무얼 망설이느냐고 재촉했다.


간단하고 심플한 제안메일을 드렸고, 카톡으로 반가운 응답을 받았다.

성공한 덕후가 된 것이다.!


그 후로 우린 그녀도 나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삶을 살아내며 천천히 친구가 되었다.

만나고 싶었지만 만날 수 없는 물리적 거리와 여건들이 있었고, 우린 애닳는 마음에 서로에게 카톡으로 선물만 쏘아댔다.

탁구를 치듯이, 구실을 만들어 선물을 주고받았다. (날씨가 더우니까, 비가 오니까,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속상하니까, OO 보내요)

그러다 얼마 전에 드디어 실물을 영접했다.


과연 작고 귀여운 이정연이었다.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그녀를 꼬옥 안아주었다.

필명을 불렀다, 본명을 불렀다, 작가님이라고 했다가, 뜬금없이 자기야 라고도 하고, 정신없는 아줌마처럼 입술이 오락가락했지만

온마음으로 그녀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다.

정말 귀에서 피가 날 것처럼 재잘대는, 귀여운 작은 새 같은 그녀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하마터면 졸음운전을 할 뻔했다.


사실 나는 그녀가 그려내는 것만큼 밝지 않다.

앞으로 발행하게 될 이야기들은 그녀를 놀래키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되고 싶은 나'를, 마치 현재형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봐주는지도 모른다. 미래에서 온 친구일까?


그녀와 나는 너무 닮아서, 놀라고

그럼에도 이렇게 오늘도 살아있어서,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라이킷을 누른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라이킷 버튼을 꾹 눌러주세요 :)


https://brunch.co.kr/@yeseul0812/519

성공한 덕후와 최애 이야기 ෆ⸒⸒


https://brunch.co.kr/@yeseul0812/477

우리 사이엔 좋은 기운이 흘러 ෆ⸒⸒




#오늘도 밥 잘 먹언

#단디 챙기레이

#두 편이나 받고 답장을 써야디, 히히



매거진의 이전글 아픔에 대한 감수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