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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연 Oct 15. 2023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공기

정연렐라의 화려한 외출


(023) 2023년 10월 15일 일요일


나를 본 그녀는 차에서 내려서 내게로 걸어왔다. 그리고 나를 와락 안았다. 가을의 싱그러운 공기 같은 데가 있 사람이라는 것이 첫 인상이었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친구로 지내왔다. 연락을 엄청나게 많이 주고받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참 꾸준했다. 그리고 늘 서로에 대해 싱그러운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구독자와 작가로 만난 우리 인연은, 순전히 그녀가 날 발견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는 투석을 앞둔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는 젊은 나이에 투석을 시작하게 된 친구가 너무 마음 아파 조금이라도 친구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싶었다. 왠지 브런치에는 글을 쓰는 투석환자가 있을 것 같았고, 녀는 발견했다. 병팔이 이정연을!


그녀는 늘 내게 먼저 다가와주었다. 그런데 그걸 알고 있을까? 친구 때문에 나를 찾아왔다는  댓글 몇 차례의 댓글 이후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녀의 친구와 그녀의 안녕이 궁금했다. 그러나 물을 수 없었다. 그녀를 가슴 한편에 두고 열심히 살아가면 그녀는 또 나의 안부를 물으 이따금씩 댓글창에 나타나곤 했다.

 

그렇게 늘 가슴 한편에 그녀에 대한 알 수 없는 그리움과 궁금증을 품고 살아가던 어느 날, 그녀가 내게 메일을 보냈다.  그녀의 이름 세 글자와 전화번호가 쓰여있었다. 내 곁에서 의지가 되는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는 메시지였다.


나는 급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무서워한다. 그런 관계의 끝이 좋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 역시 어떤 결핍이 있을 때, 누군가를 향해 급하게 다가갔던 역사가 있다. 그래서 더 그녀의 무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나는 그녀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답을 했다. 리는 서로의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한 번도 급했던 적이 없다.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눌 뿐.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은 몇 가지 없었다. 남편과 두 아들의 존재, 나보다 한 살 위의 여성이라는 것과 친정이 리틀김영옥(이정연)의 옆 도시라는 것, 지금은 나의 친구  진진과 같은 도시에 산다는 것 정도. 내 글을 무척 많이 읽어서 나보다 더 내 글에 대해 빠삭하다는 것 정도가 특별한 사실이었다. 그녀는 나에 대해 캐묻지 않았고, 나 또한 그녀에 대해 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그렇게 서로를 향해 천천히, 아주 조금씩 마음의 빗장을 열어나갈 뿐이었다.


그 빗장이 홱 하고 열린 것은, 지난해 이맘때쯤이었다. 그녀는 친정에 다니러 온다며,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이 어디든 내가 편할만한 곳을 집어만 주면 달려 나온다고 했다. 그녀에게 이정연의 메주 같은 실물을 보여줄 때라고 생각하고 서울 모처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그런데 나의 늙은 딸(62, 사실 엄마)의 신변에 전에 없던 일이 생겼다. 난 정연렐라가 되어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고 우리의 약속은 미뤄졌다.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주 목요일, 드디어 우리의 역사적인 첫 만남이 이뤄졌다. 그녀의 어머니가 다리 골절이 되시는 바람에, 그녀가 어머니를 도우러 리틀김영옥의 곁인 친정에 올라오게 된 것이다. 그녀는 불편하지 않다면, 집 앞까지 데리러 오겠노라 하였다. 덕분에 난 편히 그녀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사양을 좋아하는 내가, 사양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를 만났다. 사진으로 보던 그대로의 사람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마음으로 반기며 한 차에 올라탔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이야기 꽃이 피었다. 우리가 달리는 자유로 상행, 하행을 가르는 중앙에 억새가 예쁘게 흔들리고 있었다. 덕분에 가을바람 한결 더 예뻐 보였다.

그녀 억새와 갈대가 만발한 가을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계절에 우리가 만나 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순전히 나의 취향을 반영한 식사를 했다. 모든 직장인 남성의 점심 메뉴 1위이자 소울푸드인 돈가스가 나에게도 소울푸드다. 2위인 제육볶음도 무척 좋아한다. 쯤되면 이정연의 정체성이 의심스럽다. 녀는 내가 좋아한다는 돈가스 레스토랑으로 날 데려가서 돈가스를 사 먹였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도 한참을 이야기 나누었고, 카페로 자리를 옮겨서 또 아주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그간 묵혀두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그녀와 내 눈은 동그래졌다. 정말 많은 점들이 똑같았다.

참 재미있는 것은 딱 20년 전에 나와 가장 친했던,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친구와 그녀는 이름도 생일도 똑같다는 것이다.


그녀와 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명당에 앉아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햇볕은 적당히 마음을 밝혀주고, 바람이 적당히 우리의  설렘을 간지럽혔다.

그리고 우리는 입을 모아 말했다. "공기가 너무 맛있다. 아무 말 안 하고 이대로 공기만 마시며 있어도 좋겠다."

물론 수다쟁이인 우리 둘은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결코 살아온 이야기를 타인에게 하지 않는데, 그녀에게는 그런 말들을 모두 하게 되었다. 나의 불행을 듣고도 나를 깔보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그래서 누울 자리에 이정연은 다리를 뻗고 누웠다.


준비하는 일 때문에 지나온 글들을 다시 읽어야 했다. 사람이 바쁠수록 책상서랍을 뒤져서 청소를 하는 법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지난 글에는 어떤 댓글이 렸는지가 궁금해서 아주 오래 읽다 보니 늘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나 여기 있어!'하고 소리치는 대신, 늘 내 곁에서 묵묵히 나를 지켜보며 응원하는 주는 일을 해왔던 것이었다.


그녀는 처음 내 글을 읽은 이후, 나에 대해 너무 알고 싶어서 내 글을 차례로 모두 읽었다고 한다. 내 글 내용에 대해 나보다 더 기억을 잘해서 깜짝 놀랐다.

사실 얼마 전 그녀도 브런치 작가에 재도전하였고, 바로 합격하여 브런치 작가가 되었는데 자꾸 그 공을 내게 돌린다. 나는 그녀 안에 하고픈 말이 많다는 것, 그걸 충분히 활자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용기를 내라고 말했을 뿐인데.

그리고 늘 본인은 나의 '성덕'이며, 나는 자신의 '최애'라고 하는 명랑한 그녀.

마음이 정말 건강한 그녀와 함께 있으면 덩달아 나도 마음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드는 요즘. 그녀에게서 또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기운을 얻고 있다.


그리고 그녀와 보낸 아름다운 가을의 한 때를, 태어나 마신 중 최고로 맛있는 공기를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고 추억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리는 앞으로도 계속 서로를 구독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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