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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Nov 14. 2023

할 수 있는 게 없을 땐 마음의 약 처방이라도

인술과 기술을 모두 갖춘 의술 짱 교수님

보호자로 빅 3 병원도 숱하게 드나들고, 지방에 살면서 어린아이를 키우며 각 도마다 응급실 있는 병원도 다녀봤다. 많은 의료인을 만났지만 이번에 만난 낭만닥터 명의 선생님은 정말 디테일이 살아계시다. 복잡하고 세밀한 병을 다루시는 분 답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어서 와요. 많이 기다렸죠?라고 매번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주시는 것은 물론 자아, 여기 앉아요. 하고 의자를 톡톡~ 짚어주신다. 먼 길 오느라 힘들지 않았느냐는 말도.



이런 결을 가지신 교수님은 이전에 딱 한 분 봤는데, 우리 아이 소아사시 수술을 해주신 선생님이시다. 무려 2년 8개월을 기다려서야 초진을 볼 수 있었는데, 직접 만나 보니 이래서 갓성준 갓성준 하는구나 싶었다. 간호사선생님보다 더 자상하고 다정한 교수님의 말씀에 뭉클해져서 그간의 맘고생이 녹아내리며 얼마나 몰래 울었는지 모른다. 마스크를 써야만 병원을 다니는 시대라서 참 다행이었다. 진료날마다 우는 엄마라고 소문날 뻔했잖아.


우리 아이를 치료해 주신 갓성준 교수님과 지금 만난 나의 낭만닥터 김교수님, 그 외에는 여러 타 과 교수님들 누구도, 한가한 동네 의원에서도 그런 배려와 여유는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이 모든 행위들은 돈도 들지 않고 힘도 들지 않는 것들이지만 참으로 아픈이의 가슴을 터치하는, 또 다른 차원의 의술이다.

별 의료수가로 계산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결과가 훌륭하면 때로 과정은 잠시 배제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교수님의 환자가 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병원이란 가고 싶어서 가는 곳은 아니라지만, 특히 치과 산부인과 대장항문외과는 가장 꺼려지는 곳인 듯하다. 몸의 구멍들을 보는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환자 입장에서 내 구멍을 보여드리는 진료과정들이 참 불편하기도 하고 무섭다.

특히나 중병을 가진 채 산부인과 진료실에 들어갈 때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힘 빼세요 하고 아직 숨 쉴 틈도 없이 훅 들어오는 경험의 반복. 그런 와중에 어디선가 예상치 못한 따스함이 느껴지면, 환자의 요동치는 심장은 사르르 녹아 안정을 얻는 것이다. 한겨울날의 어느 진료날, 굴욕의자 시트가 차갑지 않게 열선이 들어와 있어서 감동을 받는 식이다.

낭만닥터 김 선생님의 진료실에는 여성으로서 꼭 앉아야만 하지만, 앉을 때마다 굴욕을 가져다주는 그 의자도 없다. 편안하게 누워서 초음파를 보는데, 어느 누구보다 정확하고 세세하게 보시고, 까막눈인 내게도 명료하게 설명해 주신다.


대학병원에 가 보면 안다. 빨리빨리 몸(환부) 보여드리고 설명은 밖에서 간호사한테 듣고 빨리빨리 꺼져드려야 할 분위기가 가득하다. 교수님은 진료실 두세 개를 연결해 놓은 통로로 왔다 갔다 하며 진료를 보시고, 때로는 의자에 앉으시지조차 않는다. 모니터 한번 쓱 보시고 치프선생님?이 브리핑하는 것만 들으시고 블라블라 자기들끼리 의료용어로 이야기하고 다음방으로 휙 사라지신다.

숨 막히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선생님 저 질문 있어요!라고 외치듯 말씀드리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꼭 궁금한 것 인터넷에서 알 수 없었던 것 진짜 교수님만이 대답해 주실 수 있는 것으로 간추려서 적어간 것을 허둥지둥 읽으면, 교수님은 나보다 더 빠르게 마치 랩퍼 아웃사이더처럼 대답을 해주시고 옆방으로 휘리릭.

이렇게 간단간단하게 진료를 보는데 매번 한 시간 이상 대기지연이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 낭만닥터 김교수님은

밖에 환자가 미친 듯이 밀려 있는데, 그 분주함과 조급함을 환자에게 내비치지 않으신다.

오전 환자 대기줄이 짧아질 즈음, 다시 오후 예약 환자들이 오고 교수님 방 앞의 전광판은 두 페이지 세 페이지 한없이 쭉쭉 늘어난다. 대체 식사는 언제 하시는 것인지, 화장실도 한 번 안 가고 진료를 보시는 것인지, 미스테리한 나의 낭만닥터 김교수님.

나는 힘든 몸 끌고 여기까지 와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하나, 비록 하루인데, 선생님은 매일 진료실과 수술장에서 이런 삶을 사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너무 궁금해서 살짝 여쭈어보았더니, 어디에 숨어서 2분간 드셨다고 한다. 2분.

뉴케어를 마셔도 그 시간 안에 다 마실 수 있을까? 그게 식사가 가능한 시간인가?


선생님의 건강을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하게 된다.

그 진심에는, 무슨 일이 생기시더라도 제 수술까지는 해 주시고..라는 이기적인 동기가 솔직히 없다고 할 수 없다. 이토록 저만 생각하는 환자라서, 죄송합니다. 흑흑_ 교수님 정말 건강하셔야 돼요..!




수술날짜를 받아놓은 현재로선, 그저 그날이 올 때까지 버티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두 달마다 방문하여 그간 병세가 더 깊어지지는 않았는가 관찰만 할 뿐이다.

사실 이번 외래를 가기 전에 많이 아팠다. 친정에 일이 있어서 450여 킬로가 넘는 거리를 두어 차례 다녀와야 했고, 시어머니 칠순 생신도 있었다. 우리는 지방에 살지만 가족들은 모두 수도권에 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오가야 했던 거리가 가늘게 유지하고 있던 내 컨디션을 바닥으로 떨어지게 했다.


작가가 된 즐거움과, 매일 구독자수가 한 명씩 두 명씩 꾸준히 늘어가는 기쁨에 푹 빠져있었지만 브런치를 들어오기조차 에너지가 필요했고 힘이 들었다.

장거리 이동을 오가는 중에 스텐트가 비뚤어지게 된 건지 피곤해서 콩팥이 부은 건지,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심했고, 한걸음 한걸음 떼기가 힘이 들었다. 가시 돋친 소변줄을 끼고 생활하는 것 같았다. 소변에 혈액 농도가 높아져 변기를 내려다보면 콜라를 쏟은 것처럼 보였다.

뭣만 하면 갑자기 뒷구리가 욱신대며 소변을 줄줄 흘려버릴 것 같은 절박감이 들었다. 소변을 눌 때마다 작열감에 으앗차차하아 하며 기합이 절로 들어갔다.

차라리 열이라도 나면 앗싸 하며 병원에 달려갈 텐데, 비뇨기과 교수님이 스텐트 시술 후 통증도 혈뇨도 뭐 다 있을 수 있는 거니까 열이 나면! 그때 병원에 오라고 하셨기에 꾹 참는 수밖에 없었다.

늘 9센티 하이힐을 신는 내가, 오만데를 다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녔다.

잠이 들면 자꾸 이를 갈아서 턱 스플린트를 착용했다.



산부인과를 다녀오고 나서 선생님이 약처방이나 무슨 처치를 해주신 것도 아니고, 사통증이 나아진 것도 아닌데 왠지 한결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충분한 진료와 대화 끝에, 두 달간 또 잘 버티다 보자며 잘 가라고 인사를 건네주시고 의자에서 친히 일어나 배웅해 주신 교수님 덕분에 마음 치료가 되어버린 걸까? 내 병은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닌데. 수술이 필요한 외과적 병인데.


선생님의 주문처럼 정말 잘 지내다 가고 싶어졌다.




#심리 트리트먼트

#교수님 잘생기심


#여기서는 기다림이 아깝지 않음

#기다린 만큼 나도 찬찬히 봐주실 테니까



교수님 본인은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과정도 너무나 친절하고 좋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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