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 죽이기
나의 최애 작가는 늘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그의 글을 읽는 동안은 어떤 새로운 세상에 가 있을 수 있었고 그 세계에서 난 위로받곤 했다. 그러다 어느날 그의 '이윽고 슬픈 외국어'라는 에세이를 읽게 되었다. 그의 소설도 너무 좋지만 어떨 때는 에세이가 더 좋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기도 하고 그 생각들이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감을 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윽고 슬픈 외국어라는 에세이에서는 하루키도 어쩔 수 없는 일본인 아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96년 작품이니 무려 20년전 그의 생각에 대해 2018년에 평가하는 건 무리가 있지만 그가 페미니즘을 우습게 여기는 시절이 있었다는게 조금 서글퍼졌다.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도 내가 그의 생각에 100% 공감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이 싫었다. 하지만 어쨌든 20년전 책이니 지금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난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다 최근 작품인 '기사단장 죽이기'는 마지막 즈음에 가서는 정(?)으로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정이 없었다면 2권 후반부쯤에서 읽기를 그만뒀을것 같다. 그가 어떤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부분에서 섹슈얼한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너무 쉽게 등장시키고 쉽게 퇴장시켜버리는 방식이 너무 안일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주요 캐릭터 중 한명은 엄청난 스토커인데 그걸 애절한 사랑처럼 묘사한다고 느껴진 순간 더이상 그 소설에 몰입할 수 없었다. 그가 어떤 의도로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느순간 갑자기 깨달은 것처럼 불편함을 느꼈다. 하루키는 작가로 데뷔하기 전에 재즈바를 운영했다고 하는데 그때의 모토는 10명의 손님중 다른 사람은 싫어할지라도 한두명만은 완전 좋아하는 가게를 만들자 였다고 한다. 소설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쓴다고. 지금껏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그 한두명이 되고 싶었고 지금까지는 그 한두명으로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어떤 작가의 작품세계를 읽고 즐길 수 있는건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 만큼이나 행운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친구를 한순간에 잃어버린 기분이다. 너무 쓸쓸한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껏 좋아했던 예전 작품이 싫어진 건 아니지만 앞으로 나올 그의 작품을 더 이상 좋아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게 정말 슬프다. 어쩌면 내가 과민반응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일본이 중국에 저질렀던 악행 중 하나인 난징 대학살을 아주 잠깐 이나마 언급하는 소설이라 화제가 됐었다. 게다가 이런 유명한 작가가 스토킹을 옹호하는 소설을 쓰다니 말이 안되잖아! 라는 생각이 드는것도 사실이다. 하루키가 그럴리가 없다며 현실 부정을 하다가도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으며 불편했던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는 이 소설이 싫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소설이 재미없을 수는 있지만 싫어진 적은 없는데 이 책은 싫어졌다. 그리고 그게 너무 슬프다. 나이가 든다는건 정말 좋아했던 것들을 이렇게 자꾸 잃어버리기만 하는 과정일까봐, 나는 안 그럴줄 알았는데 결국 똑같이 좋아하는것만 자꾸 사라지는 걸까봐 슬퍼진다. 흑흑. 싫어하는것만 늘어나는게 아니고 좋아하는 것도 늘어나겠지? 뭔가로 정화하고 싶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