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스모 Dec 11. 2018

술버릇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술먹고 벌인 일들을 웃기다고 기억하는 사람과 진상이라고 기억하는 사람. 때때로 다르지만 나는 높은 확률로 전자에 해당한다 술을 마시고 심지어 필름이 끊겨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행복한 느낌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취하는 즐거움에 대해 공감할 것이다

나의 주사에는 여러 단계가 있는데 마지막 끝판왕같은 주사는 남을 걱정하는 것이다 술마시고 하는 행동이 진심과는 딱히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내가 잔뜩 풀어져있을때 하는 행동이 남걱정이라니 정말이지 우습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다 아니면 따뜻하다고 봐야 하는걸까

남 걱정의 형태는 주로 귀가에 대한 걱정이다 집에 어떻게 가는지 집에 잘 찾아갈 수 있는지 계속 물어본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도 아닌거 같은게 그걸 물어볼때쯤엔 대게 사람들 중 내가 가장 취해 있기도 하거니와 내가 집에 도착하면 언제 걱정했었냐는 듯 잠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나의 걱정하는 주사가 생긴건진 모르겠다 세상이 흉흉하다고 느껴서일까 여튼 이십대의 많은 날들이 나의 남 걱정으로 끝나곤 했다. 이제 곧 연말이 다가오고 취할 날은 많은데 이번엔 좀 더 나를 걱정하고 싶다. 그게 맘먹은대로 될리 없지만 나 스스로를 돌보고 싶은 이유는 최근에 나는 쉬고 싶다는 생각을 엄청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굴러가는데 타이어에 펑크가 나고 휠이 바닥에 긁히고 있는 와중에도 멈출수가 없어서 계속 직진만 외치고 있던 꼴이랄까 어쩌면 작은 휴식이 필요한걸수도 있고 아님 그저 마음만 한번 굳게 먹으면 다시 잘 굴러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연말은 좀 더 나에게 다정한 사람이고 싶다 남한텐 충분히 잘해줬던거 같으니 잠깐이라도 나한테 잘해줘야지 어째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쉽게 소홀하게 되는게 나 자신인걸까 삼십 넘은지도 꽤 됐는데 아직도 이렇게 서툰거 보면 한 백 살쯤 살아야 인생 전문가가 될 수 있을것 같은 기분이다

작가의 이전글 하루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