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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형 모험가 Jul 13. 2023

걱정이 되지만 우리라서 될 것 같다(2)

20일간의 제주올레길 일기


#04/20

제주도착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제주에 도착!

함께 오는 두 번째 제주라 익숙한 듯 설렘. 

어깨가 무거운 만큼 기대되고, 

남은 코스가 많은 만큼 다짐이 강해진다.

글을 읽고 쓰고 영상을 찍고 sns에 게시하자며 

호기롭게 시작한 기록

어떻게 추억될지 기대된다.

오빠 우리 안전하고 재밌게 걷고 

이번을 진하고 행복하게 추억하자



#4/21 

한라산 탐방

첫 번째 시도를 실패해 더 기다려졌던 한라산. 

많은 산을 타봤지만(자칭) 

우리나라 고도 1위인 만큼 긴장이 됐다.

제주살이를 반기듯 깨끗한 하늘과 생기 가득한 나무가 우릴 반겼다. 

오늘따라 "제주 가기 전에 기초운동 해둬야 해" 했던 오빠 말도 떠올랐고 끝내 고도 1,950m의 정상을 정복했다. 1면ㄴ간 산 타면서 체력이 얼마나 키워졌나 실감 난 하루였다. 산을 안전하게 탐방한 우릴 위해 고기를 선물하고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저녁엔 들어와 와인도 한 잔 했다.

빨간 술 한 잔이 주는 위력은 대체 뭘까.

분위를 만들어 준 와인 덕에 솔직한 얘기가 풀어져 나왔다. 

오늘 만큼은 괜찮을 것 같았다. 사랑하는 오빠고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지만 오늘 밤 또 깊게 사랑을 느낀 날이었다. 

감사하다. 



#4/22

올레길 출발! 17코스 안전하게 완료!

기다렸던 올레길이 드디어 시작됐다. 15킬로 이상 매일 걷는 게 내 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기대도 걱정도 되었다. 동시에 내심 '우리가 못할 리가 있나' 하는 마음가짐도 있었다. 

중간 정도를 넘어가니 서서히 말수도 줄고 앞으로의 한 달이 감히 어떨지 서서히 그려졌다.



#4/23

아침으로 도시락 하나, 컵밥 하나 데워서 오순도순 먹는 게 재밌다.

서울에서는 원하는 만큼 다 먹던 거 제주에서는 같이 아끼는 게 당연해져서 절약하는 법도 배워가고 있다. 

그래도 아침은 챙겨 먹는 우리가 귀여웠다.

18코스는 뜨겁게 더웠고 마지막에 만난 밥집은 반갑게 맛있었다.

제주에 온 지 4일 차인데 화장실을 시원하게 못 가고 있다..(파이팅)

오늘은 카페단단이라는 곳에 다녀왔는데 우리의 취향을 저격해 다음에 또 가고 싶은 곳이었다.

올레길 다 돌고 피곤할 텐데 나갔다 온 보람이 낭낭하다.



#4/24

비가 오는데도 진행하고 있는 우리가 멋졌다. 

기력을 회복해 보자며 든든한 전복뚝배기도 먹었다. 19코스는 숲을 지나 걷는 코스였는데 야생동물이 언제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길이 오래 진행돼서 긴장이 됐다. 덕분에 화장실 소식까지..

오빠도 아마 긴장했을 텐데 계속 대안을 얘기해 주고 달래주며 날 안심시켰다. 고마웠고 듬직했다. 혼자였음 못했다. 아니 또 했겠지만 그렇게 믿고 싶다. 

저녁엔 치맥 하며 여유롭게 저녁을 즐겼다. 아는 언니랑 연락했는데 '완전 걸을만해~'라며 여유 부린 나, 언제까지 갈까.

어제오늘 많이 무리해서 걸었음에도 괜찮다며 손빨래를 해낸 우리 대단하다. 

손빨래 이슈가 있었다. 난 집에서 종종 애벌빨래를 하지만 오빤 허리 아프도록 비벼 빤 제주살이의 시작이 실감이 났나 보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빨래 얘길 한참 했다. 아마 제주에 왔기 때문에 우리가 살림 중 한 부분을 같이 해보지 싶다. 오빤 투정과는 달리 깔끔하게 빨래도 건조도 잘했다. 

앞으로 한 달이 기대된다. 


#4/25

오늘은 우리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기념일에 대한 이벤트 욕심도 없고 같이 제주에서 도전하며 보내는 오늘을 기쁘게 보내기로 했다. 

일찍부터 공항에서 애월 방면으로 숙소를 옮겨 오느라 무거운 배낭을 다시 메고 길을 나섰다. 몸이 힘들어지니 우리 둘은 조금씩 날이 섰다. 가끔 내가 답답할 때 오빠의 말투가 바뀌는 걸 느낀다. "그렇게 할 거였어" 문자로 쓰면 괜찮게 보이지만 목소리로 들으면 기분이 훤히 느껴지는 그런 투였다. 가끔 뭔가 정하자고 묻는 말에 말이 안 되는 답을 그럴듯하게 답하면 내가 답답해하곤 한다. 어쨌든 숙소를 잘 옮겨 놓고 15코스를 시작했다.


칼국수를 맛있게 먹고 나와 기분 전환이 된 우린 신나 있었다.

"신혼집에 대한 로망이 있어?"란 질문을 시작으로 한참 재밌게 얘기하다 만난 해수욕장에서 1주년 케이크를 샀고 잠시 앉아 웃으며 쉬었다.


웃긴 일이 있었다. 다 걷고 복귀하던 버스에서 짐을 메고 통로를 막고 있던 청년이 있어 내려야 할 역에 내리질 못했고 역을 지나가버려 당황했다. 막고 있던 청년에게 벨을 눌러달라고 요청했고 손을 올렸는데 벨이 고장 나 반응을 안 하자 "벨이... 안 눌려요..." 했던 그 순간. 우리 셋이 동시에 아이컨텍했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무심한 버스기사에서 화가 날 뻔했지만 이 반응에 벙찌고 내려 우리끼리 깔깔거리며 좋아하는 노래를 몇 곡 더 들을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숙소를 들어오는 길이 외져 나갈 때부터 걱정이 됐는데 우리만의 방식으로 웃긴 걸 떠올리며 그 시간을 잘 보내는 게 잘 맞았던 것도 좋다. 억지로 놀리거나 대놓고 무섭다고 말하는 걸 싫어하는 걸 오빠도 동의한다는 듯이.

오늘만큼은 우리의 날이라며 맛있는 고기를 먹었다. 서비스와 맛이 좋은 식당을 만난 게 좋았고, 돌아와 우리만의 1주년 축하파티를 즐기는데 그 모습이 귀엽고 좋았다. 

1년을 자주 보고 놀며 보내서 체감상 더 오래 본 것 같다는 말에 동의했다. 더 오래 볼 앞으로가 기다려진다. 



#4/26 

16코스를 걷기로 한 오늘 14,14-1을 걷고 하루를 아끼기로 했다. 5일째만에 정석을 깨는 꼴이 돼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타협점을 찾고 출발했다.

오늘은 오설록까지 가는 날인데 버스를 미리 찾아보지 않은 게 바로 티가 났다. 환승 정류장에 내렸고 버스가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황했지만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대안 찾게 도와주는 오빠 덕에 금방 일어났다. 

이럴 때 보면 날 참 잘 다루더라. 생각보다 길게 이어진 코스를 마무리하기까지 체력을 많이 썼다. 

내일은 추자도에 들어가는 날. 멀미가 어떨지 벌써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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