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의 1년이 흐르고 있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마음 한구석에 작은 불씨처럼 남아 있었다. 그 고민은 단순하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온 이들, 시각디자인과 출신의 동기들과 선후배들 사이에서, 마치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을 주고받으며 시작된 것이었다. 우리의 시선은 그린디자인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 주제는 우리 손에서 무겁고 낯설게 미끄러져 나갔다.
의상디자인 전공의 후배가 오기 전까지는, 우리는 거의 모두 그래픽이나 편집디자인 출신이었다.
나는 공예를 전공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영상디자인으로 경력을 쌓아온 터라, 그린디자인에 대해 다가서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의 논의는 매번 겉돌았다. 환경을 향한 메시지와 그린디자인이라는 이상, 그것을 실질적인 무언가로 바꾸기엔 무엇이 부족한지, 누구도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
그건 어떤 절박함으로도 채울 수 없는 간극처럼 보였다.
그러던 시기였다. 어느 날 아버지를 통해 옆집 아저씨가 연락을 주셨다.
제품 디자인이 필요한데, 내가 도울 수 있는지를 물으셨다. 사출 공장을 운영하는 분이었고, 한전 쪽 입찰에 필요한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일을 수락했다.
처음 일을 시작하는 디자이너들처럼,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포장하며 시작했다.
마침 회사에서는 작은 광학 제품을 개발하려고 했고, 대학교에서 배웠던 3D 프로그램을 다시 꺼내 들었다. 제품 디자인, 금형, 양산의 과정을 하나하나 배워가며 조심스레 발을 내딛었다. 내가 가진 지식은 친환경 소재에 대해 책에서 얻은 몇 가지 단편적인 이해와 대학에서 배운 프로그램 기술이 전부였다.
나는 관련된 회사를 찾아다니고, 스터디를 하며 밤을 지새웠다.
옆집 아저씨의 입찰용 시안과 회사의 제품 디자인은 우여곡절 끝에 완성되었다. 비록 몇 가지 설계의 오류와 불량이 발생했지만, 회사의 제품은 예상 외로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Version 2의 디자인을 준비하며, 나는 조심스럽게 자신감이라는 감정을 품었다. 그때 문득, 내 속에서 일렁이던 어떤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내가 정말로 제품 디자인을 해보아야겠다.’
지구에 남을 수 있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실질적으로 양산의 과정을 통해 탄소발생량을 줄이고, 환경에 가장 가까운, 가장 필요한 디자인을 만들고 싶었다. 그 생각은 갑작스럽고 위험한 자신감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내 인생을 바꿀 거라는 예감에 젖어들었다.
‘이것이 내 커리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