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의 1년. 그 시간은 논문이라는 이름으로 얇은 유리창처럼 앞에 놓여 있었다.
그곳에 이르기 위해 온 마음을 던져야 했고, 그곳을 투명하게 지나갈 수 있을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여러 번 주제를 붙잡고 놓기를 반복했다. 전공의 울타리 안에서, 또 그 너머의 어딘가에서 내가 가장 의미 있다고 느낄 주제는 무엇일까, 길을 잃은 듯 혼자 골몰하던 날들이었다. 그러다 문득 일본 혼다의 ASIMO를 만났다. 지금에야 AI가 탑재된 수많은 휴머노이드가 세상에 나왔지만, 아시모는 첫 순간이었다. 존재가 불가능할 것만 같던 것을 눈앞에 실재로 구현한 기적의 산물처럼 다가왔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진 첨단과 정교함이 아시모 안에 응축된 듯 보였다. 그 디테일, 그 날카로움. 그들은 먼 미래를 지금에 쏟아부은 사람들이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이 기계의 정점에 다다른 존재와, 자연을 지향하는 디자인이 만난다면 어떨까. 아시모의 부품 수가 자동차의 두 배라는 문구를 보며, 마음속에서 가닥이 잡혀갔다. 머지않아 이 기계들이 일상이 될 것이라면, 그 과정에 친환경이라는 무늬를 새겨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불편한 파장을 낳았다. 교수님은 좀 더 생태적인 면을 드러내는 것이 맞다고 하셨다. 아직 신생 학과였고,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 우리 학과의 정체성을 만들어 갈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며 이끌려야 할지, 나아가야 할지 고민했다. 그렇지만 내 철학은 바뀌지 않았다. 기존과 차별화된 친환경, 지속 가능한 방향을 위한 디자인만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 생각했고, 나에게는 너무나도 절실한 길이었다.
“내가 뭐라고, 얼마나 환경에 기여할 수 있다고.”
그렇지만 그것은 이미 나의 방식이었다. 아직은 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내게 확신처럼 다가온 유일한 답이었다. 그래서 교수님의 반대에도, 내가 세운 철학을 관철하려고 했다. 논문에서만큼은, 내 주제를 실현하고 싶었다.
끝없는 자료 찾기와, 한 줄의 이론을 더 정리해내려는 밤들이 이어졌다. 사례는 고사하고 그 개념조차 희미한 주제. 무엇을 근거로 어떻게 더 나은 비주얼을 제시할 수 있을지, 지친 새벽에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한동안 회사에서는 삼청동 이슈로 밤낮이 엉켜 있었고, 남는 시간이라곤 출퇴근 지하철과 새벽의 어두운 시간뿐이었다. 그때 들고 다니던 책들이 여전히 책장에 남아 있다. 바랜 페이지, 낡은 메모들. 책을 펼칠 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단단한 시간이었지만, 가끔 그 기억이 목울대까지 차오를 때도 있다.
그리고, 중간 평가일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