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개발실에서는 매년 연말마다 발표 행사가 열린다. 각자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팀을 이루고, 주제를 정해 발표하는 자리다. 발표 주제는 개발실 프로젝트와 관련된 내용을 골라야 한다. 모든 발표가 끝나면 팀장과 임원들이 심사해 순위를 정하고, 1, 2, 3등 팀에게 상금을 수여한다. 연말 회식비의 형태지만, 단순히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1등 팀에게는 임원회의에서 발표할 기회가 주어진다. 사실상 이 자리는 회장님께 다음 프로젝트를 예고하는 자리나 다름없었다.
출판사가 주된 사업이어서인지, 이런 행사는 무척 특별해 보였다. 단순히 술자리로 끝나는 연말 회식 대신, 회사의 정체성과 개발실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할 기회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회사 입장에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거나 아이디어를 얻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속한 팀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편집디자이너들과 같은 조가 되었는데, 이들은 연말 업무로 바쁜 와중에 이런 행사까지 신경 쓸 여유가 전혀 없었다. 결국, 팀의 차장님이 나를 따로 불렀다. “교구 쪽으로 방향을 잡고, 하고 싶은 대로 해보세요. 저희는 신경을 못 쓸 것 같네요.” 자신들은 참여하지 못하니 나 혼자 맡아달라는 말이었다.
솔직히 나쁘진 않았다. 발표 형식도 궁금했기에, 한 번 맡아보겠다고 했다.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발표 주제는 ‘유아 교구 디자인 방향’으로 잡았다. 컨셉 스케치를 시작했고, 자료를 모으며 하나씩 디자인안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다른 팀들이 준비한 자료들을 보고 조바심이 일었다. 발표 자료는 그야말로 논문 수준이었다. 두꺼운 자료집에 치밀하게 정리된 내용들. 나는 이 방식으로는 절대 경쟁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방향을 돌렸다. 시각 자료와 이미지를 중심으로, 발달 단계별 유아 교구 디자인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딸아이가 세 살 정도 되었던 때라 아이의 발달 단계에 대한 감각은 익숙했다. 매일같이 우리 딸이 사용하는 교구를 관찰했으니까. 내가 사주었던 장난감 브랜드들, 해외 출장에서 구입했던 교구들, 아이가 잘 가지고 놀던 물건들을 떠올렸다. 디자인 과정은 나에게 자연스러웠다.
발표 날이 다가왔다. 팀별로 차례대로 발표가 진행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전문적인 발표 내용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가 시간을 쪼개가며 만든 발표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돈되어 있었다.
우리 팀의 차례는 거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계획한 대로 시각 자료를 중심으로 발표를 준비했다. 다른 팀들과 차별화된 비주얼 기반의 내용. 아이들 발달 단계에 맞춰 디자인된 이미지 위주의 설명. 내가 발표를 이어가자 사람들 사이에서 탄성이 들려왔다. 끝난 후 우리 팀원들은 말했다. “우리 팀이 1등일 거예요.”
결과는 3등이었다. 실망스러운 결과였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이기도 했다. 심사하는 분들이 주로 팀장이 있는 팀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었고, 우리는 팀장이 없는 팀이었다.
폐회사를 맡았던 전무님은 상을 수여하며 “내 마음속 1등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 직감했다. 우리 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며칠 후, 임원회의 발표 요청이 나왔다. 본래 1등 팀이 해야 할 발표를, 3등을 한 우리 팀도 하게 된 것이다. 이 자리에서 내가 처음으로 회사의 임원들 앞에 나섰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누구도 나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모두가 내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발표가 끝난 후 임원회의 분위기는 다소 달라져 있었다. 긴장 대신 웃음과 온기가 돌았다. 회장님이 짓던 미소가 유난히 오래 기억에 남았다.
며칠이 지나, 인사팀장의 호출을 받았다.
회장님이 주도하는 신규사업부로의 발령이었다. 이 사업부에 필요한 디자인 인력을 내 손으로 꾸릴 수 있다는 권한이 주어졌다. 그제서야 모든 게 보였다. 이건 회장님과 전무님이 그려낸 큰 그림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부서를 만들어 회사 내부의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었다.
결과적으로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회사를 구성하는 이 모든 사람이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갈등은 끝없이 피어났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중심에서 새로 시작해야 했다.
그 해의 마지막, 내게 그 씁쓸함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 여운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