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적막한 회사의 공기는 냉랭했다.
나는 입사 이후 처음으로 회장님이 직접 참석하는 팀장단 회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한가운데 앉아 있는 회장님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개발실의 전무님, 실장님, 그리고 개발팀 팀장들이
자리 잡았고, 오른편에는 부사장님과 지원부서, 마케팅 및 영업 관련 팀장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서로가 현안을 보고하고 날카롭게 질문을 던지는 자리였다.
회의의 분위기는 개발실의 신규 개발안을 중심으로 한쪽에서는 효율성과 판매 가능성을 따지는
대립구도로 흘러갔다. 개발실은 돈을 쓰는 부서였고, 반대편은 이를 직접적으로 매출로 연결하는
입장이었기에 냉정한 질문과 의구심이 섞인 반응들이 오갔다.
전 직장에서 나 홀로 제품 디자인으로 싸우던 때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단순히 디자인 문제만으로 풀 수 없는 숙제가 쌓여 있었다.
이곳은 출판과 영유아 교구를 함께 만드는 곳이었기에, 모든 연령대별 전집 제품에 책과 교구 콘텐츠를
조화롭게 만들어야 했다. 나 혼자 잘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회사 전반의 상황을 이해하고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었다.
이 회사의 첫 번째 히트 상품은 ‘한글 교육’ 이었다.
한글 교육은 만 3세부터 시작되며 고객 충성도를 바탕으로 매출을 올렸지만, 경쟁사들이 모방 제품을
내놓으며 점점 시장의 균열이 생겨났다. 그래서 회사는 더 어린 연령층, 심지어 영유아의 놀이학습이나
임신 태교 시점부터 시작해 한글로 연결하려는 시도를 모색하고 있었다.
영유아 놀이 학습 제품은 장난감이나 교구가 많고, 무엇보다 안전성이 담보 되어야 했다.
하지만, 기존 출판사들이 만든 제품들은 디테일과 안전성이 결여된 조악한 결과물일 때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교구나 장난감에 대한 전문성이 요구되었고, 그 점에서 내가 이 회사로 스카웃 된 배경이었다.
경쟁사보다 상위의 컨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영유아 콘텐츠 전문가인 영유아 1위 업체 개발 팀장을
스카웃했으며, 오늘 회의는 그와 관련한 개발 계획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회의는 냉랭함 그 자체였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 때문일까, 아니면 서로를 견제하려는 무언의 경쟁심 때문일까.
웃고 있는 얼굴들 뒤에는 날카로운 의도를 감춘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회사 내에서조차 서로 이러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 회장님은 그저 묵묵히 중재하듯 지켜보기 만 했다.
개발팀 팀장은 끊임없이 합리적인 논리를 제공해야 했고, 쏟아지는 요구에 맞춰 백업 자료를 계속 만들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개발팀은 전문 영역이 아닌 매출 분석과 판매 계획까지 자료를 만들게 되었다.
마치 인건비만 낭비되며 효율을 잃어가는 악순환 같았다.
이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든 걸 늦추고 있었다.
방향만 정해진다면 신속하게 개발하고 판매 테스트를 거친 뒤 시장 반응을 보고 수정해 나가는
전략적 방식이 훨씬 효과적일 텐데, 여기서는 무언가를 결정하기 전까지 끝없는 심사숙고만 반복되고
있었다. 설득을 위해 아무 검토도 되지 않은 컨셉 시안을 요청 받고, 말도 안 되는 워딩과 터무니없는
일정이 제시되었다. 이 보고 일정에 맞추기 위해 내 스케줄은 고려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것은 정치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모두가 서로를 이용하려는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구조를 겪으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가다 가는 이 회사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회의 속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계속 힘겹게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았다.
실장님, 제작팀, 개발팀. 복잡한 구조와 얽힌 관계 속에서 머릿속은 점차 더 혼란스러워졌다.
책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야 하는 미팅 자료에 치이며, 개발팀조차 힘겹게 밀려가는 모습이었다.
시간은 그렇게 지나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새 회의와 조율 속에서 한 해가 끝나고 있었다.
하지만 연말에는 개발실에서 준비하는 특이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 우리에게 너무 안 좋은 소식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잘 쓰진 못하지만, 조심스레 제 회상에 가까운 글을 써 나가고 있는데,
올해 2024년은 제게도 너무 힘든 한 해였기에 이를 통해 힘듦과 슬픔을 이겨 내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모든 분들이 진심으로 행복하고 건강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제게 도움을 주시는 많은 분들과 소중한 우리 가족들 모두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J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