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직속 개발팀으로 옮기고 본격적인 교구 개발이 시작됐다. 교육 콘텐츠 파트에서는 유아 전집 그림과 내용을 지속적으로 보고하며 만들어가고 있었지만, 뭔가가 계속 겉돌았다.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부서가 회장님 직속으로 바뀌면서 타 부서 팀장들의 과도한 관심과 부정적인 시선이었다. 전집 방향이 교구 중심으로 잡히면서 콘텐츠 개발자들이 지속적으로 디자인에 관여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고, 이는 나와 잦은 마찰로 이어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교육 전문가라 생각하며,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제품 컨셉이나 실제로 구현이 불가능한 아이디어를 요청했다. 심지어 누가 보더라도 예쁘지 않은 색조를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관철시키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아이가 없는 상태였다면, 아니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딸아이를 그 연령대에 키운 경험이 있는 아버지로서, 그들의 요구는 객관적인 데이터보다 개인적인 경험과 주관에 의존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갈등이 격해지던 어느 날엔 내 딸이 특이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를테면, 그들은 유아용 제품에는 무조건 따뜻한 색조만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내 딸이 생후 한 살 즈음에 가장 좋아하던 색은 하늘색이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사온 하늘색 강아지 인형은 딸의 애착인형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품에 안고 있을 정도다. 당시 유행했던 애니메이션 '뽀로로'의 색조 또한 주로 차가운 계열이었으며, 디즈니의 '겨울왕국'은 한색의 정점이었다. 이 모든 사례들은 그들의 논리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 서로 조율하며 개발은 원만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 초기에는 감정이 동반된 기싸움이 빈번했다.
개발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가던 무렵, 팀에게 "임팩트 있는 대형 교구가 필요하다"는 요청이 내려왔다. 처음에는 여러 교구를 활용할 수 있는 책상이 제안되었다가, 근육 발달을 돕는 걸음마 보조기가 언급되었고, 마침내 두 기능을 합쳐달라는 요구까지 나왔다. 이 와중에 수시로 중간 보고를 위한 디자인 시안을 요청해왔다. 그 결과, 내 퇴근 시간은 매일 밤 11시를 넘겼다. 집에 도착하면 아내와 딸은 이미 잠들어 있었고, 새벽에 떠나는 내 모습만이 남았다. 일상이 반복되며 내 딸은 주말에만 아빠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문제는 개발과 제작이 아니라, 프로세스 자체가 너무 엉망이었다. 나는 문제를 지적했지만, 회사에서는 나를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으로 간주했다는 뒷말이 떠돌았다. 많은 여성 인력이 조직 내에 포진한 것이 어떤 한계로 작용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맡은 일에 책임을 져야 했기에 일은 미룰 수 없었다.
콘텐츠 기획팀과의 회의 중 깨달았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전집의 책과 교구 전체를 아우르는 디자인 컨셉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작업들을 보면, 각 파트는 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따로 놀고 있었다. 전집 특성상 교구와 책의 통합적인 컨셉이 필요했다. 이전 회사에서 했던 프랑스 P사의 트렌드 자료가 떠올랐다. 이를 바탕으로 이번 프로젝트에 맞는 디자인 컨셉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생소했던 북유럽 디자인 컨셉을 채택했다. 미니멀하고 친환경적인 접근은 영유아용 제품에 적합했고, 자연적인 느낌의 컬러는 교육 콘텐츠를 담아내기에도 적합했다. 결과적으로 콘텐츠팀과 디자인팀에서도 큰 이견 없이 합의가 이뤄졌다.
그렇게 진행된 작업 중, 아이들의 인지를 고려한 동물이나 식물 모티프의 대형 교구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동물 중에서도 코끼리가 가장 적합해 보였다. 독특한 생김새, 길게 늘어진 코와 큰 귀, 육면체와 같은 단단한 덩치. 그것은 순하지만 때론 강한 존재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덤보'만 보아도, 코끼리는 어린아이들에게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는 동물이었다.
마침, 비트라에서 나온 ‘임스 코끼리 스툴’도 이런 원리로 만들어진 디자인이었다. 아이디어 스케치를 거쳐 3D 시안을 만들었을 때, 회사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때마침 경쟁사 W사에서 둥근 모양의 유아용 책상을 출시했지만, 큰 반응은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소비자 조사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코끼리 교구는 회사 내외에서 기대를 한껏 받으며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엔 끝없는 작업이었다. 안전성과 사용성을 확인하기 위한 구조와 하중 테스트, 넘어짐 방지를 위한 무게중심 설계, 친환경 소재의 파괴성 검토 등 모든 단계를 거쳤다. 도중에 외부 전문가들의 도움을 구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갔다. 그러나 회사 내에서 나를 도와줄 이는 없었다. 이런 일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분위기 속에서 오직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이 코끼리 교구는 성공적인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출시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브랜드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며 꾸준히 판매되었다.
그 코끼리는 지금도 우리 집 거실 한쪽에 있다.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어버린 딸이 아빠의 작품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며 버리지 못하게 했다. 먼지가 내려앉은 코끼리를 청소하다 보면, 가끔 마음 한편의 우울함이 희미해지는 것 같다. 아마 나와 내 딸의 손때가 스며든 덕일 것이다.
SNS에서 코끼리가 등장한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딸아이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그 기억 속, 딸의 환한 미소가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