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감이었다.
아이들이 부모를 통해서든, 선생님을 통해서든, 책을 보거나 매체를 접하면서 무언가를 이해하고 궁금해할 때, 그 반응은 곧 교감의 흔적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교감은 물리적인 접촉이 필수였기에, 모든 환경과 상황이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지 못하는 현실에서는 종종 그 균열이 생겼다. 하루 종일 육아에 지친 부모들은 자신의 휴식을 위해 스마트폰을 아이 손에 쥐여 주곤 했다.
물론 이제는 다양한 인터랙티브 기능을 탑재한 어플리케이션이 쏟아져 나왔지만, 스마트폰은 아이를 단순히 화면 속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로 길들이고 있었다.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교육 기업들 역시 디지털 매체의 편리함에 기대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아이템은 태블릿이나 스마트폰 중심으로 통합되는 추세로 개발되었다. 활자를 눈으로 익히며 손으로 넘기는 전통적인 독서는 더 이상 아이들 세상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종이로 된 책을 아이들에게 쥐여 주고,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읽기를 원했다. 그것은 간단한 바람 같지만 실상은 부모들이 자신들은 누리지 못하는 디지털 중독에서 아이들만은 자유롭기를 바라는 모순 같기도 했다. 너무 편리한 세상에 길들여진 현실이 만들어 낸 자연스러운 기대일지 모른다.
그래서 많은 교육 회사들이 3세 이상 아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교육용 펜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책의 망점 인쇄 패턴을 읽어 펜에 달린 스피커로 책 내용을 들려주거나 간단한 학습 기능을 제공하는 디바이스였다. 하지만 이 펜이 작동하려면, 아이들이 글 위치를 알고 펜을 손에 쥔 채 지정된 영역에 가져다 댈 정도의 인지가 필요했다. 다시 말해, 이 도구는 3세 이전의 영유아에게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컸다.
이번에 개발 중이던 전집에는 영유아도 사용할 수 있는 디바이스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나왔다. 새로운 개념의 디바이스 없이는 부모들의 눈길을 끌기 어려웠다. 그러나 대상이 영유아라는 사실이 문제였다.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는 손에 무엇을 쥐게 하고, 책을 읽게 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대체로 그들은 큰 그림책을 좋아했고, 한 페이지에 한두 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문장으로 된 책을 읽었다. 부모가 그려진 그림을 보며 상상력을 덧붙여 설명해 줄 때 비로소 이야기가 완성되곤 했다.
각 권의 책에는 책 내용에 맞춘 동요 음원을 함께 제공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 동요를 어떻게 들려줄 것 인지였다.
컨텐츠 개발팀은 자동차 모양의 장난감 디바이스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이 아이디어에 대해 고민하며 딸아이의 장난감을 다시 살펴보니, 어린 시절 바퀴 달린 장난감에 특별히 흥미를 보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바퀴가 달린 장난감은 약간의 힘으로도 움직였고, 그 움직임이 아이들에게 큰 재미를 주었다. 운동성이 있는 장난감이 어린아이에게 적절한 이유를 다시 실감했다.
하지만 자동차 모양의 장난감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드는 일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기존의 펜처럼 책에 인쇄된 코드를 정확히 읽어내는 렌즈를 자동차에 장착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고, 설령 장착하더라도 영유아가 이를 조작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려웠다. 그때, 기존 방식의 정확도를 낮추는 쪽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책 한 면에 하나의 콘텐츠만 담아 어디에 자동차를 올려놓아도 소리가 나게 하고, 모든 페이지에 동일한 코드를 배치하는 단순화 구조를 택했다. 말 그대로 단순한 아이디어로 발상의 전환을 이루고자 했다.
이러한 목업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테스트해 본 결과, 아이들은 자동차를 오래 갖고 놀았고 책에 대한 관심도 크게 증가했다. 이를 지켜본 부모들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워 했다. 스마트폰이 없어도 아이 스스로 책에 흥미를 느끼게 했다는 점이 그들에게는 획기적이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책 속 코드를 자동차의 라이트 색상과 연동시키는 기능을 추가했다. 예를 들어 빨간색 그림에 자동차를 가져다 대면 자동차 라이트가 빨간색으로 바뀌는 식이었다. 이 기능은 부모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주었고,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아이디어로 평가받았다.
‘핀덴카’라 이름 붙여진 이 작은 자동차는 그렇게 세상에 등장했다. 20여 년간의 디자인 여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제품들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제품을 출시한 후에도 부모들의 구매 후기에는 늘 핀덴카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디지털 매체에 지친 이 시대의 부모들에게 이 작은 디바이스는 단비 같은 존재였다. 단순하지만,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제품을 만들고자 했던 의도가 빚은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핀덴카를 시장에 출시하자마자 나는 이 제품을 독일로 보냈다. 제품 자체의 가치에 대한 평가를 받고 싶었다. 이번에는 레드닷이 아니라 iF 디자인 어워드였다. 레드닷이 상업적 느낌이 강했다면, iF는 제품 디자인에 대한 깊이를 보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뒤 독일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는 iF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