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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과 열정 사이에서, 다시 묻다.

by J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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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와 같이 스톡홀름의 백화점에 시장 조사차 방문했을 때, 쇼윈도 너머로 익숙한 브랜드들이 보였고, 북유럽을 기반으로 한 제품들이 무심한 듯 정돈된 방식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발길은 자연스레 완구 코너로 향했다. 그곳엔, 내가 예테보리에서 유모차로 처음 접했던 브리오의 다양한 제품들이 있었다.


브리오는 나무로 만든 장난감과 기차 세트로 유명한 브랜드였다. 손에 들어보니 무게감과 촉감이 좋았다. 그때 떠올랐다. 북유럽과 독일 북부 지역에는 너도밤나무 숲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는 사실. 너도밤나무는 단단하고 색이 고와, 가구와 목공예 제품을 만들기에 적합한 수종이었다. 오래 전, 나무 교구를 개발할 때 독일 북부, 예전 동독 지역의 회사들과 미팅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서독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했고, 생산 단가도 합리적이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유럽에서 판매되는 고급 나무 장난감 중 상당수가 ‘메이드 인 저머니’였다.


한참을 그렇게 제품을 둘러보다가 유아복 매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파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이곳은 명품 브랜드보다 자국 브랜드의 비중이 높았다. 그러다 눈에 띈 한 브랜드. 동물 패턴을 활용한 유아복을 만드는 곳이었다. 패턴 속 동물들은 하나같이 멸종 위기종이었다. 한국에서도 환경을 테마로 한 브랜드가 간혹 있었지만, 디자인과 품질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패턴과 색감, 소재까지 모두 세심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라벨을 보니 ‘미니로디니(Mini Rodini)’였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꽤 알려진 브랜드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존재조차 몰랐던 생소한 이름이었다. 인터넷 직구조차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 브랜드의 첫 런칭이 2000년대 중반 즈음이었으니, 역사가 길지도 않았다. 대표는 일러스트레이터 출신으로, 모든 동물 패턴을 직접 그린다고 했다. 소재는 리사이클과 오가닉. 생산량도 철저히 통제하는 듯했다. 몇 년 후, 이 브랜드는 프랑스의 유기농 신발 브랜드인 베자(VEJA)와 협업해 유아용 신발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 매장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다. 디자인 철학과 제품을 바라보는 관점. 친환경이라는 말이 상업적 수식어가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녹아든 브랜드. 그때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 회사를 만든다면, 이런 회사가 되어야 한다고. 나의 철학을 온전히 담아, 세상에 무언가 의미를 남길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회장님과 부사장님도 이 브랜드에 관심을 보이셨다. 내게 물었다. 무엇이 이 브랜드를 특별하게 만드는지. 우리가 이런 제품을 만들 수 있는지. 나는 그들에게 설명했다. 제품 하나하나에 담긴 철학, 디자인의 방향성, 환경과 아이들을 동시에 생각하는 방식. 두 분은 진지하게 들으셨다. 어쩌면, 우리도 이런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지 검토해보려는 눈치였다. 아니, 아예 미니로디니의 유통을 가져오는 것도 생각해보시는 듯했다.


스웨덴에서 만난 것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미니로디니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시장 조사 때 관심 있게 봤던 ‘펌 리빙(Ferm Living)’ 같은 브랜드도 있었지만, 품질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 시절에는 워낙 일이 많아, 이런 브랜드를 시장 조사 차원에서 흩어보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미니로디니의 대표를 떠올리면 존경과 부러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스스로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이런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까. 내 모든 것을 걸고, 확신 하나만으로 친환경이라는 모토를 지켜낼 수 있을까.


남의 회사를 다니며 급여를 받고, 안정된 환경에서 일을 맡을 때는 무엇이든 제안하고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내 모든 걸 투자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과연 나는 그 용기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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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만난 브랜드들의 시작은 대부분 개인의 흥미에서 비롯되었다. 더 바디샵(The Body Shop)의 애니타 로딕, 베자의 창립자, 그리고 프라이탁(Freitag)의 형제들도 그랬다. 최근 한국에서도 119REO처럼 소방복을 재활용해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가 등장했지만, 이들도 명확한 동기에서 출발한 사례다.


지금 나와 함께 일했던 브랜드들 역시 대부분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남겼을까. 현실에 안주한 건 아닐까. 그래서 우울함과 무력함을 달고 사는 건 아닐까. 이처럼 과거를 회상하며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그런 허무함을 달래기 위한 시도는 아닐까.


나는 이 글을 쓰며, 내 디자인의 여정을 되짚고 있다. 일과 삶,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한 기록. 동시에, 잊고 있던 초심을 다시 찾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제주대 특강으로 초청받았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교수는 내게 학생들의 취업에 대해 물었다. 그 순간, 친환경 디자인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음에도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무력감을 느꼈다.


이 글의 끝자락에서 나는 또 다른 시작을 꿈꾼다. 친환경 디자인에 대해, 진정성 있는 글을 써내려가고 싶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아니 나 자신에게라도 작은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스웨덴을 떠났다. 독일을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공항에서 내리는 순간, 현실은 다시 밀려왔다. 새로운 개발과 업무의 압박. 그리고 예상치 못한 변화들.


하지만, 그때의 미니로디니, 스웨덴의 햇살, 아이들의 웃음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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