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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훌름, 디자인의 결을 따라 걷다.

by JJ Feb 24. 2025


우리는 6시간을 달려 스톡홀름에 도착했다. 스웨덴의 수도라지만, 서울과 비교하면 도시의 크기는 한참 작아 보였다. 도심으로 들어설수록 그런 느낌은 더 짙어졌다. 오래된 건물들과 새로 지어진 상점들이 나란히 서 있었지만, 그조차 소박하고 단정한 분위기였다.

처음 방문한 곳은 ‘유니바켄’이었다. ‘말괄량이 삐삐’의 나라답게, 동화 속 세계를 현실에 풀어낸 공간이었다. 들어서는 순간, 실내를 가득 채운 작은 곤돌라 형태의 스토리 체험관이 눈에 들어왔다. 도서관과 굿즈샵, 작은 연극 무대까지, 이곳은 동화와 현실의 경계에서 부드럽게 흔들리는 세계였다.


모든 것이 유치하지 않게, 조악하지 않게 만들어져 있었다. 디자인과 디테일은 촘촘했고, 어디 하나 허술한 구석이 없었다. 일본의 지브리 미술관을 축소해놓은 듯했지만, 똑같지는 않았다. 지브리가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방식이라면, 유니바켄은 스웨덴 사람들의 생활과 정서를 배경 삼아 동화적 상상력을 현실에 자연스럽게 끼워 넣은 곳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잔디밭에 많은 가족들이 나와 산책을 하고 있었다. 날씨는 약간 서늘했고, 하늘은 희뿌연 가을빛을 띠고 있었다.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편안하고 풍요로워 보였다.


이곳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었던 건, 회사의 브랜드 방향성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브랜드의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은 아직 미완성에 가까웠지만, 유니바켄은 그 미완성의 퍼즐을 맞추는 방법을 보여주는 듯했다. 단순한 상품 판매를 넘어 체험과 이야기, 공간과 감정을 하나로 엮어내는 방식. 한국에서도 캐릭터를 활용한 체험관은 늘어나고 있지만, 대부분이 3D 캐릭터에만 의존해 생명력이 짧고, 대상 연령층도 제한적이었다.


출산율이 급격히 낮아진 지금, 이런 공간들이 하나둘 문을 닫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추억과 시간을 함께 쌓아갈 수 있는 곳. 시장성을 높이는 방법은 어쩌면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스톡홀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구시가지의 작은 상점들이었다. 왕궁을 중심으로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정도의 거리.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옛 구옥을 개조해 만든 편집숍과 상점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상점마다 나름의 색깔과 개성을 지니고 있었고, 그 안의 진열 방식과 제품 구성, 공간을 채운 소품 하나까지도 신중하게 선택된 듯 보였다.


그곳에는 시장의 번잡함도, 무분별한 물건들의 소음도 없었다. 오히려 상점과 거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전시관처럼 느껴졌다. 스위스 취리히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지만, 스톡홀름은 더 작고, 아기자기하고,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졌다.


구시가지 한쪽에서는 초등학교를 발견했다. 학교 근처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놀이기구의 형태, 아이들의 행동, 친구들과 어울리는 방식. 나라가 달라도, 아이들의 모습은 언제나 닮아 있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노벨 박물관이 나타났다. 노벨의 나라답게, 이곳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공간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자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만난 아이들의 모습과 겹쳐졌다. 아이들은 노벨이라는 자국의 위인을 만나고, 그의 업적과 철학을 가까이에서 체험하며 배운다. 책이나 교과서가 아닌, 현장과 공간에서.


어린 시절 무엇을 처음 접하고 자라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생각과 철학이 결정된다면, 스톡홀름의 아이들은 이곳에서 지적 토양을 마련하고 있는 셈이었다. 노벨이라는 상징을 어떻게 기리고, 보존하며, 다음 세대로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국가와 재단의 노력이 눈에 보였다.


밤이 되어서도 나는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편의점은 몇 곳이 문을 열어 두었고, 거리의 분위기는 평온했다. 사람들의 표정도 순박했고, 치안에 대한 불안감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뉴스를 보니, 난민을 수용하면서 예전의 안정적인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다고 했다.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지금과는 다른 느낌일지도 모른다.


신시가지 쪽으로 나가니, 디자인 편집숍들이 몰려 있었다. 북유럽 하면 떠오르는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들이 빼곡하게 진열된 공간. 우리는 동선에 포함된 모든 매장을 둘러보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케아와 같은 브랜드가 이곳에서 탄생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기후와 척박한 토양, 긴 겨울. 집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실내 공간을 꾸미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루이스폴센 조명이나 무토, 헤이와 같은 브랜드가 대부분 이 지역에서 탄생한 이유도, 그런 생활 방식과 맞닿아 있었을 것이다. 매일 머무는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고, 편안하게 꾸미려는 마음.


그리고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케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북유럽 브랜드는 디자이너의 고민과 손길이 깊게 스며든 제품들이 많았다. 디자인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소재와 만듦새까지 정교했다. 그래서 가격도 비쌌다.


집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작은 사물의 디테일 하나까지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작은 틈과 모서리, 조명의 색감, 촉감까지. 그런 세심한 관찰과 생활의 필요가, 이곳의 고품질 디자인을 낳은 것 같았다.


스톡홀름은 예테보리와는 달랐다. 디자인과 관련된 제품과 상점이 곳곳에 퍼져 있었고, 도시를 지나는 시간도 더 느리게 흘렀다. 새로운 공간을 발견할 때마다 발걸음이 멈췄고, 계획한 일정은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만큼, 보고 싶은 것과 알고 싶은 것들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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