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 내렸을 때, 날씨는 흐렸다. 스웨덴 예테보리. 처음 오는 곳인 데도 낯설지 않았다.
대학교 시절, 가장 해보고 싶었던 공모전이 있었다. 볼보에서 주최하는 디자인 공모전. 대상을 받으면 볼보 본사가 있는 이곳으로 초청받아 디자인 연구소와 공장을 방문할 수 있었다. 나는 그때 당선되지 못했다. 1위를 한 디자인은 소화기였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주제에는 공감이 갔었다. 그래픽 부문 대상은 드럼 페달을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에 비유한 것이었다. 드럼의 울림이 엔진의 두근거림과 같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그 두 작품을 보며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달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부러웠던 건 수상자들이 스웨덴에 가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는 꿈만 꾸었다. 북유럽이라는 미지의 땅. 모던한 디자인이 일상이 된 곳. 나에게는 환상과 같은 공간이었다. 이제야 그곳에 도착했다. 늦게나마.
예테보리는 스웨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하지만 스톡홀름과는 다르다. 마치 서울과 부산처럼. 항구가 있고, 바다가 가깝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 도시는 크지 않았다. 거리는 조용했고, 건물들은 낮았다.
비행기는 스웨덴 항공이었다. 로고부터 기내 용품까지, 디자인에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 디자인 회사에서 브랜딩을 맡았다고 했다. 볼보의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를 디자인한 회사. 노벨상의 브랜드 디자인을 만든 곳. 그리고 그 회사 역시 스웨덴에 있었다.
도착한 도시는 예상과 조금 달랐다. 스위스를 처음 갔을 때도 그랬다. 알프스를 배경으로 한 풍경은 모든 것이 그림 같았다. 너무 완벽해서 현실감이 없었다. 빈틈이 없는 깨끗함. 때로는 너무 정갈해서 정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예테보리는 그 중간 어딘가에 있었다. 세련됐지만, 차갑지는 않은.
창문이 열린 집들이 보였다. 안에 놓인 가구들은 모두 이케아였다. 거리에 있는 작은 가게들도 예뻤다. 나는 딸에게 줄 작은 인형 하나를 샀다. 거리를 걷다 보면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세련되었지만, 과하지 않았다.
회장님이 발견한 베이비페어가 열리는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전시회와는 달랐다. 거창한 규모를 예상했지만, 소박했다. 마치 시장과도 같은 분위기였다. 회장님과 부사장님은 당황한 듯했다. 예상보다 정보 없이 온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것들을 보고 있었다. 여기에 모인 부모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국적과 상관없이, 부모들은 어디서든 비슷했다.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위한 물건을 고민하고, 그들의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나는 전시회장 안을 돌아다니며 유모차 브랜드를 살펴봤다. 가장 많이 보이는 건 ‘엠마융아’였다. 박람회장을 지나는 유모차의 70%가 이 브랜드였다. 나머지는 ‘스토케’나 ‘브리오’. 브리오에서 유모차를 만든다는 것도, 엠마융아라는 브랜드도 처음 알았다.
스토케와 비교하면, 프레임의 두께나 컬러에서 밀리는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세련된지는 잘 모르겠었다. 가격을 검색해 봤다. 스토케와 거의 같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브랜드를 더 선호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인근의 유아용품 매장을 둘러봤다. 엠마융아의 유모차는 거의 모든 매장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양한 옵션과 A/S 서비스까지. 마치 스웨덴에서 볼보가 차지하는 위치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했던 브랜드였기에, 회장님과 부사장님도 수입 가능성을 검토하는 눈치였다.
나는 또 다른 점이 궁금했다. 바퀴와 완충 장치.
유럽의 구도심에는 돌로 만든 도로가 많다. 바퀴가 작거나 쿠션감이 부족하면, 진동과 충격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될 것이다. 그래서 이 지역 사람들은 이런 유모차를 선택하는 걸까?
한국의 도로는 대부분 아스팔트로 되어 있으니, 그런 필요성을 덜 느꼈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모차가 실용성보다 ‘소유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다시금 생각했다.
우리는 박람회를 둘러본 후 자연사 박물관과 미술관도 방문했다. 밴쿠버에 있을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이곳 역시 아이들과 가족을 위한 공공시설 디자인이 잘 되어 있었다. 한국도 요즘 신경을 많이 쓰고 있지만, 이렇게 도심 한가운데에 부모와 아이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여전히 부러웠다. 밴쿠버보다 작은 도시이기에 오히려 접근성이 더 좋아 보였다.
파리에서 봤던 것과는 또 달랐다. 파리에서는 아이들이 문화유산을 직접 접하는 느낌이었다면, 스웨덴은 다음 세대를 위한 디자인을 새롭게 개척해 나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곳이 더 공감이 갔다.
우리는 찬란한 유산을 지닌 민족이다. 그러나 잃어버린 것도 많다. 일제강점기, 너무 많은 것들이 약탈당했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빼앗긴 것들을 되찾으려 한다. 반면, 유럽의 강대국들은 수 세기 동안 타국의 문화를 가져다 쌓아 올렸다. 그들이 쌓은 다양함과 풍요로움은 반드시 정당한 것이 아니었지만, 가까운 곳에서 세계의 유산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은 부러울 때도 있었다.
스웨덴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침략의 역사를 남긴 바이킹을 품고 있지만, 근현대에 들어서는 전쟁에 휘말리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온 나라. 수탈로 쌓은 것이 아닌, 자신들의 방식으로 쌓아 올린 문화. 우리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어딘가 닮아 있는 듯한 나라.
예테보리의 조용한 거리와, 아이들을 위한 공간들, 오래된 돌길 위를 굴러가던 유모차의 모습이 천천히 기억 속에 남았다. 나는 가방을 챙기며 창밖을 바라봤다.
이제 스톡홀름으로 떠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