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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Dec 01. 2019

살아있으니까 오늘, 방어를 먹어.

♪amazarashi-未来になれなかったあの夜に

남에게 내세울 정도로 불행하진 않지만
눈물은 노잣돈이라 할 만큼 냈어
-
꿈도 이상도 사랑하는 사람도
믿는 것도 포기했지만
단 하나 말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에게 묻는 건 포기하지 않았어



♪amazarashi- 미래가 되지 못했던 그 밤에



올해 구매했던 여러 가지 것들 중에 가장 잘 산 것이 있다면 올 초에 구매했던 < 살아있으니까 귀여워 >라는 책이다. '사라지고 싶은 날, 살아지게 하는 책'이라는 표지 문구가 마음에 들어 구매했던 책인데, 지금도 사무실 자리 옆 책장에 고이 자리하고 있는 그런 책이다. 아주 가볍게 ( 내용이 가볍다는 것이 아니다. ) 쓰인 책이라, 지금도 종종 꺼내어 대충 중간부터 펼쳐보곤 한다. 그러니까, 책을 펼칠 때는 책 표지의 그 문장이 떠오를 때다. 






작년 이맘때 즈음엔 정말 많이 힘들었더랬다. 몸으로는 천식부터 정신적으로도 고생을 하고 있을 때였고, 그건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 아직도 사람이 붐비는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은 잘 타지 못해 백화점 10층 즈음에 위치한 미용실을 에스컬레이터로 오르내리거나 중간에 내려 숨을 고르기도 한다. 사실 그때만 해도 내년 이맘때 즈음인 지금 즈음엔 괜찮겠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는데, 해를 넘어 올해가 끝나가도록 나아질 기색이 없는 것을 보면 참 지독한 녀석이다.  


무언가 마음이 뻥 뚫린듯한 기분으로 살았던지라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듯이, 혹은 약을 투여하듯이 두 달이 조금 안 되는 동안 천만 단위의 돈을 썼던 때도 있다. 그 돈으로 어떤 명품을 질렀으면 그나마 뭐라도 남았을 텐데, 호텔에서 며칠 묵는다던가, 갑자기 당일치기로 해외로 나간다던가 등의 대체로 '도망치는 것'에 그만큼을 썼으니, 이만한 낭비도 드물겠다. 당연히 월급쟁이 주제에 그런 생활이 오래갈 수는 없었고, 다시 도망치듯 현실로 돌아왔고, 통장 잔고의 앞자리만 바뀌었을 뿐, 변한 건 없었다.      






펼칠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다. 귀엽진 않지만.


최근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요즘엔 괜찮아졌는지에 대해 질문받았다. 당연히 괜찮지 않다고 답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복잡하게 엉켜있어 콕하고 누구의 탓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기분이라 답했다. 그래서, 누구에게 원망을 돌릴 수도 없고, 돌릴 사람조차 없어, 그냥 안고 살고 있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도, 스스로 풀어낼 수 없다는 것은 시간이, 통장이, 사람이, 세상이 친절하고도 확실하게 알려준 터에 그저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때때로 숨이 턱 막힐 때 저 책을 꺼내어 네다섯 페이지 정도 읽는 정도였고, 이런 나일지라도 이어왔던 사회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적당한 '면'을 쓰는 정도였다. 그때마다 저 책이 큰 힘이 되어줬으니, 소중한 책일 수밖에. 






그래도 와중에 다행인 점이 있다면 하루의 끝에 항상 하는 기도 앞에 '이렇게 하루를 마치고 기도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원망해서, 혹은 세상이 힘들다고 주저앉았더라면 그 '감사' 할 일을 겪지 못했을 거란 말이다. 그러니까, 


그 감사란 건 별 것 아니다. 

오늘은 혼자, 먹고 싶던 방어를 시켜먹었다. 

오늘도 나는 살았기에, 이렇게 방어를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한 것이다. 며칠 전에는 급작스럽게 지하철에서 내려 울었고, 또 며칠간 이야기를 쓸 수 없었다. 그 끝에 돌아온 보상과도 같은, 방어다. 






그래, 방어를 먹어야 하기에 겨울에도 난 산다.


'오늘은 방어를 먹었다. 맛있었다.' 

따위로 정리될 수 있는, 누군가의 한 줄에는 어쩌면, 이렇게도 자질구레한 사연이 담겨있을 수도 있는 법이다.

"여러 가지의 일이 있었지"
의 "여러 가지"를 하나하나 상세히 적고 싶어 펜을 들었지마는 
amazarashi - 미래가 되지 못했던 그 밤에 中

이란 노래 가사처럼. 






*

어쩌면 브런치에 적어가는 이러한 일기도 그런 두려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올 초에는 하루에 서너 가지 이야기를 끄적여서 여기저기 흩뿌릴 때도 있었고, 차마 밖으로 글을 끄집어낼 수 없을 정도로 힘들 땐 혼자서 끙끙거리다 남몰래 낙서처럼 쓰도 숨을 들이마시기도 했다. 그러다 차곡차곡 쌓아보자는 생각에 이 곳에 쓰기로 생각했다. 


다른 '작가'님들처럼 책을 낸다던가, 멋진 작품을 만든다는 것보단 혹시나 자칫하면 사라질 내 하루를 어딘가에 기록하고, 살아있길 기대하며 썼다. 지금까지 백 번째까지의 이야기를 쓰기 전, 처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단군신화의 곰도 백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는데, 이 곳에 백 가지의 우울함과 힘듦을 담아내면, 나도 무언가 바뀔까. 


바뀐 것은 없고, 그저 살아있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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