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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Nov 27. 2019

케이크가 있기에 생일이 의미 있지

♪MONGOL800- 小さな恋のうた

넓은 우주의 많은 것 중 하나
푸른 지구의 넓은 세계에서
작은 사랑의 마음이 닿아
작은 섬의 당신 곁에


케이크를 앞에 두면 보통 이 곡(정확히는 이 편곡)이 떠오른다. 빵돌이라 빵은 크게 가리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케이크는 특히  어떤 '마음' 같은 기분이다.



이제 누구에게도 반박할 수 없는 삼십 대 중반인지라, 모두가 그렇진 않다 해도 생일이라는 일 년의 이벤트에는 많이 무뎌진 요즘이다. 특별히 축하를 받거나 그런 일도 드물게 되었고, 상투적인 생일 축하 메시지들을 핑계 삼아 오랜만에 사람들과 연락하는 그런 날이다. 그래도 케이크는 별개의 이야기다. 케이크는 언제나 설렘을 담고 있지. 생일을 핑계 삼아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정확하게는 일부러 방문해서 먹기 애매한 스위츠를 맘껏 먹는다. 이번엔 생일 전 주에 떠났던 도쿄에서 그렇게 즐겼다. 그것도 4일 씩이나.  






1일 차. Toshi Yoroizuka 

@롯폰기



정말 저 배만 따로 먹어도 맛있겠다 싶었다. 감히 올해 먹은 최고의 스위츠다. 


이 번이 두 번째 방문인데 첫 번째에는 진열된 케이크를 사 먹었고 이번에는 이 매장의 특징 중 하나인, '디저트 바'를 이용했다. 바에 앉아있으면 앞에서 파티시에가 라이브로 나를 위한 디저트를 만들어주는 그런 바이다. 가격도 1,400-1500엔 대라 받는 서비스를 생각하면 한 번 즈음은 투자해볼 만한 비용이 아닐까 싶다. 


메인 디저트를 먹기 전에 주는 호박 수프? 느낌의 애피타이저가 짠맛을 올려주는데, 짠단 짠단 테크(?)로 맛을 배로 올려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번에 방문해서 먹은 건 바에서 먹는 디저트답게 포장으로 먹기 힘든 밀푀유. 아이스크림과 복숭아를 졸인 데코레이션도 맛있지만 역시 저 밀푀유 사이의 '배'가 압권이다. 어떤 배합으로 졸였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 안다고 만들지도 못할 거면서 ) 감히 올해 먹은 배 중에 가장 맛있는 배였다고 자부할 수 있는 맛이었다.






2일 차. Quil Fait Bon (키르훼봉)

@긴자



계절 과일들도 있지만, 역시 겨울은 딸기의 계절이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일본 지역 중 하나인 후쿠오카에서 유행하는 키르훼봉이다. 막상 본점은 도쿄 위 시즈오카에 있지만 도쿄에는 꽤 긴 시간 들어오지 않다 몇 군데 지점이 생긴 타르트 전문점이다. 여담이지만 본점이 보고 싶어서 시즈오카에 다녀온 적도 있는데 명성에 비해 작은 점포여서 다른 의미에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무래도 이 곳의 가장 눈길이 가는 메뉴는 온갖 제철 과일들을 가득 올린 과일 타르트일 텐데 요즘엔 방문할 때마다 고르는 메뉴는 저 베리 타르트이다. 특히 겨울이면 이 메뉴를 선택 안 할 이유가 없다. 서너 종류 섞인 -베리의 조합이 상큼하고 가끔 걸리는 오독한 식감도 좋다. 의외로 치즈 타르트도 괜찮다고 하는데 막상 한 번도 먹어보진 않았다. 


현지인들에게 워낙 인기가 많아 이 날도 40분 정도 대기를 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정도까지? 의 느낌은 아니라, 많다면 포장해서 다른 곳에서 먹는 것도 가능하다. 매장에서 먹는다면 테이블이나 카페 전반적인 인테리어는 전국 비슷한, 아기자기하고 샤랄라 한(?) 느낌이고, 매장마다 균형적인 맛으로 관리되고 있으니, 보인다면 어딜 가도 괜찮은 퀄리티의 타르트를 경험할 수 있다.    






3일 차. Le cordon bleu ( 르꼬르동블루 )

@다이칸야마 



몽블랑은 묘하게 '따뜻한' 맛이다. 설산의 이름을 가졌는데도.


다이칸야마와 지유가오카는 정말 고품질의 스위츠를 경험할 수 있는 가게들이 곳곳에 있다. 정말 말 그대로 곳곳에 있기 때문에, 진열장 너머로 맛있겠다 싶으면 대체로 맛있다. 그중에서도 이번에는 지유가오카에 위치한 <몽상 클레르>를 방문할 요량이었는데, 배가 너무 부른 관계로 다음 일정 지였던 다이칸야마의 < IL PLEUT SUR LA SEINE >를 가려고 했으나... 비 때문에 외부에 비치된 자리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 참고로 이 곳에 가서 시부스트 오렌지가 있다면 꼭 드시라. 줄까지 쳤다. ) 


두 개의 후보가 취소되어, 스위츠 욕구가 조금 사그라들어 아쉬운 대로 르꼬르동블루로 발걸음 했다. 아쉽다고는 했지만 120년 전통 프랑스의 대표적인 요리 학교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이 곳의 빵들은 이 곳의 레시피를 배우는 학생들이 만들고, 전문 파티시에가 검수해서 내어놓는 그런 콘셉트의 가게이다. 그래서 비교적 저렴하다. 방문했을 때도 많은 학생들이 베이킹을 배우고 있었다. 적당히 타협해서 프랑스 출신 유명 파티시에의 손길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한국에도 있으니 이번 여행 중 방문한 곳 중에선 가장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다이칸야마에 방문한다면 저 위의 가게로 방문하겠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4일 차. HARBS

@우에노 



과일 크레이프 케이크가 메인인 곳이다. 어지간한 크레이프 케이크는 다 맛있다. 


나의 사랑. 하브스.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도쿄에 방문하면 두 번은 오는 곳이다. 매장 한정과 계절 한정 케이크가 나오기 때문이다. 키르훼봉과 함께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디저트점 체인의 양대산맥으로 역시 디저트를 먹을 시간이지- 라는 즈음에 방문하면 여지없이 현지인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그만큼 늦게 가면 한정/인기 케이크를 먹지 못하는 불상사가 있으니 점심 디저트 타임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역시나 여담으로 하브스의 본점을 보고 싶어 일부러 나고야에 방문하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키르훼봉도 그랬지만, 가을-겨울로 넘어가는 시점이어서 그런지 과일류보다는 밤, 모카 등을 이용한 한정 메뉴가 나왔고 그래서 마지막 생일 케이크는 모카 크레이프 케이크로 선택했다. 일정 중 가장 케이크답게 생긴 케이크여서 괜히 점원에게 '저 오늘 생일이에요. ( 아니면서 ) '  '어머 축하드려요!' 따위의 대화를 잠깐 나누었더랬다. 커피가 생각보다 진해서 단 케이크와 궁합이 꽤 괜찮다. 맛은 굳이. 나의 사랑 하브스니까. 크레이프 케이크는 정말 여기가 제일이다.  





생일 케이크를 혼자 앞에 두고 있는 것이, 초를 올리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 벌써 익숙해진 것을 보면, 아마 꽤 괜찮고 씩씩하게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저 케이크가 맛있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홀케이크를 앞에 두는 날이 언제 즈음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저 조각으로 나오는 케이크가 여러모로 더 정감이 간다. 마음을 나눠 가지는 기분이다. 오글거리지만 정말 그렇다. 그렇게 마음을 4일 내내 달랬고, 축하해줬다. 올해의, 풍성한 생일 케이크다.  그러니까, 오늘 나는 생일이고, 사실은 그저 그런 여느 때와 같은 하루이지만 케이크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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