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d Dec 10. 2019

글에 물도 주고, 쉼도 줘야지.

♪쏜애플 - 2월

새사람을 만나기까지는
매번 이틀 정도가 모자란데
눈치도 없게 자꾸 보채기만 해
나는 아무것도 줄 게 없는데




사실 처음에 이 곳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백일이면 백개의 글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더랬다. 하루에 두어 개의 글도 쉬이 썼으니까 하루에 있었던 일을 남기는 것은 훨씬 쉬울 것이라고 여겼는데, 이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더란 말이다. 처음 일기를 빼먹었을 때는 아마 여행지에서 매우 아팠던 여름날이었지. 백개의 이야기를 쓸 때까지 백삼십여 일이 걸렸으니, 이후에 꽤나 많이도 빼먹었나 보다. 이 즈음에선 왜 빼먹었는지 이유도 기억나지 않은 채, 쓰이지 않았을 뿐인데 지워진 하루가 되었다. 일기가 이렇게 소중한 법이다. 






매일 써야지. 

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니, 처음에는 무언가 죄책감? 비슷한 기분도 들었더랬다. 이렇게 길지도 않은 글도 하루에 꼬박 못 쓰는데 무엇은 또 꾸준히 할 수 있겠어라며 자책을 했더랬다. 아무도 그에 대해서 무어라 하지 않고,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 이야기인데, 혼자서 기다리고 그리워한 탓이겠다. 


이러한 감정도 지나고 나니, 글을 쓰지 않는 내 하루가 오히려 소중하게 느껴지는 때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꼭 무언가를 남길 정도로 특별한 삶을 살아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어떤 때는 어디에도 꺼내지 않고 혼자 속으로 곱씹는 맛이 있는 하루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 맛이 비록 이 곳에 남기는 글보다도 더 씁쓸한 맛이더라도. 그 마저도 소중한 것이었다. 






그렇게 이러한 이야기도 생기게 된 것이다. 글 쓰는 것을 쉬었고, 쉬었더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 와 같은. 글을 써야겠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것이 우습게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니 조금은 스스로 덜 보채도 괜찮겠다 싶었다. 비록, 언젠가 기록했던 이야기들을 뒤적거렸을 때, 숭숭 빈칸을 차지한 하루가 어떤 하루였을지는 아마도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은 못내 아쉽지만. 아무것도 아닐 하루가 모여 또 하루를 만들 테다. 이 하루도, 그 하루도 모두 특별하고 소중할 테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자랄 테다. 

작가의 이전글 오랜만에 몸에 맞는 바지를 입은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