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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Dec 26. 2019

오늘은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어

♪백예린 - Berlin

베를린에서 우린 어디로 가죠
11월에서 12월까지
-
이 세상에서
당신은 무엇을 위해 노래 하나요



♪백예린 - Berlin


어제는 크리스마스였고, 무언가 쓸까 하다 접어두었다. 매트리스를 하나 샀는데, 싱글 침대는 좋은 등급이 안 나온다고 해서 조금 슬펐다 정도의 이야기로 정리될 법한 싱거운 하루여서이다. 사실, 지금 쓰려는 건 어제 떠올렸던 마음이지만. 


매트리스를 사고 집으로 오는 길에, 문득 어딘가로 떠나고픈 마음이 들었다. 글을 쓰고 싶어서였다. 아마 내년이면 조금 더 새로운 글들을 써봐야지. 지금의 내 것이라 보이기에는 어색하겠지만, 내 것이 되었으면 하는 이야기들을 남기고 싶어. 정도의 생각이었다. 언젠가 내가 '첫 책'을 쓰게 되는 날이 있다면 그 시작은 꼭 도쿄의 한적한 어딘가에서 그 첫 글자를 쓰고프다고 여러 번 혼잣말로 이야기하곤 했는데, 어제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떠나고팠다.  






책을 쓰고픈데, 어떤 이야기를 쓸 거야?라는 고민을 여러 번 한 끝에 나왔던 주제는 일본에서 한 달을 살며 보게 될 여러 가지 이야기와, 사람들과, 그 날에 어울리는 음악에 대한 기행문이자, 감상문 같은 것이었다. 팔리지 않을 건 상관없어. 원래 그런 것들을 써왔는걸. 그러니까 그런 것을 써야지,라고 마음을 먹었는데 사실 이게 나와 같은 사람은 쉽지 않은 거라. 




2019년 처음 떠났던 일본의 지역은 삿포로였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눈꽃축제의 다음 주에 떠났던 3박 4일인데, 예쁜 작품들은 다 사라지고, 눈도 질척 질척하게 녹고 있던 그런 풍경이었다. 고작 한 주 차이였는데. 여하튼 그때도 역시 혼자서 돌아다니다 보니 목소리를 낼 일이 없어 목과 입이 종종 갈라지고는 했는데, 삿포로의 소울푸드라고도 불리는 스프카레 집에서 드디어 갈라지는 목을 가다듬고 목소리를 내었다. 


" 혼자 오셨어요? 유튜버신가 봐요" 

" 네? 아니오. 혼자 왔어요."

" 맥주 한 잔 하실래요? 여기 맥주 두 잔이요."


사실 말을 걸 요량은 아니었지만, 고프로 같은 걸로 메뉴판이나 가게를 요리조리 찍는 걸로 보아 한국인, 관광, 유튜버구나 정도로 생각하던 차였는데,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고 뻘쭘해진 분위기에 맥주를 시켰었다. 졸지에 외국까지 와서 이성에게 치근덕대는 모습이 된 것 같아 조금 난감한 기분이었지 뭐야. 그래도 역시 술은 참 좋은 커뮤니케이션 도구인 게,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나눌 수 있었던 것 같다. 


혼자 왔고, 삿포로는 처음이라고 하여 이런저런 명소(대부분 먹을 곳이었지만)를 알려드리고, 그즈음하니 내 앞에 그릇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얼른 일어나면서 "그럼, 즐거운 여행 되세요!" 라며 인사도 제대로 못한 채 호다닥 가게를 빠져나왔던 기억이 있다.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그 무엇도 모른 채 일이십 분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이래서야 무슨 글을 쓰겠어. 한 달이 아니라 한 순간도, 한국인과도 제대로 대화를 못하는 내가 외국에서 남들과 함께한 일상을 쓴다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쓰인 이야기는, 글은, 책은. 일상을 기록했다기 보단, 엿보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우선은 사람들과 어색하지 않게 대화하는 법부터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아마도, 이건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거겠지만, 누군가와 대화를 익숙하게 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굳이 일본이 아니라 집 앞 카페에서도 첫 글자를 시작할 수 있겠다 싶었다. 


사실 내가 쓰고팠던 이야기는 그저, 누군가와 함께하는 소망을 담은 그런 이야기일 거라고, 어제는 막연하게 떠올렸기 때문이다. 





+

가끔은 미래의 내가 봐도 이 날은 어떤 일이 있던 날일까 모를 정도로 숨겨놓는 편이다. 어제부터 오늘까지의 이야기는 그러니까, 누군가와 대화를 했는데 참으로 어색해서 스스로 똥멍청이! 라며 이불킥을 했던 날의 기록이다. 잊을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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