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d Dec 31. 2019

이런 삶이라도 남길 수 있음에.

♪上北 健 - DIARY

여전히 변함없이, 발자국은 하나뿐이야.
길을 걷는 중. 추운 겨울의 끝.
석양 진 거리가 조금 상냥해 보여.
그런 날의 이야기야.


♪上北 健(kamikita ken) - DIARY


어제 쓴 글에도 있지만, 사실 벌벌 떨며 시작했던 2019년. 온전하진 않지만 살아남았다. 몇 시간이나 남은 시점에 자만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이런 불안한 기분을 1년 내내 껴안은 채 살아온 나에게 몇 시간이라도 평안을 주고픈 마음이다.


1년 간 썼던 이야기들을 시간을 들여 주욱 둘러보았다. 넷상 어딘가에 올려놓은 이야기가 250 여개 정도가 되었고, 나와의 채팅에는 몇 가지의 이야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밖으로 꺼낼 수 있었던 이야기보다는 배는 넘는 건 사실이다. 어느 혼술집의 휴지조각에도, 이미 소실되어버린 이면지나 포스트잇에도 364.n일의 기록들이 쌓였더랬다.






순간순간 쓰는 행위를 멈추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날을 읽을 때는 그때의 감정이 떠올라 조금 슬퍼졌다. 그만큼 먹먹했던 순간들이었다. 또 다른 어떤 이야기 속 나는 밝았지만, 사실 어떤 기분으로 썼는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한 해의 이야기들을 한동안 그렇게 먹먹하게 읽었더랬다. 차라리, 슬프다며 휘갈긴 - 휘갈겨도 바른 모양의 글자로 쓰이는 메모장을 사랑한다. - 이야기가 나에게는 위안이 되는 이야기였다.


화면 속 나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슬퍼 보였고, 외롭고, 힘들었는데 무어가 그렇게 억울하고, 무어가 그리 말하고 싶었는지, 그러면 무엇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는지 멈칫멈칫했던 순간에도 결국에는 오늘까지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아마 내년도 비슷할 테다. 내용도, 문맥도, 어순도 엉망진창으로 나열되어가는 이야기들은 아마 억지로나마 무어라도 써 남기기 위한 그런 글- 몸짓에 가까운 -들이었겠다. 그래서, 삐뚤빼뚤한 이야기 때문에 그 날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희미해진 것들도 많지만, 어떤 기분이었지는 떠올릴 수는 있었다.




올해 언젠가는 '무언가를 창작하고, 만드는 사람에게 있어 최고의 뮤즈는 <외로움>이다 는 이야기를 들었다'라는 오글거리는 문장을 적었더라. 그렇게 생각해보면 언젠가는 또 간사한 마음에 이렇게 쓰는 것을 쉴 때도 있겠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일 년 삼백육십오일보다도 많은 숫자의 이야기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모두가 온전히 내 이야기고, 흔적이고, 살아남았다는 증거 같은 이야기다. 이렇게 내가 잘 버텼다며.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닐지 몰라도, 나는 이렇게 힘들었지만 잘 버텼다고. 이렇게 쓰지 않아도 괜찮은 날이 오더라도, 그때의 충만한 기억들도 이렇게 가득가득 남기고픈 건 욕심일 테다. 그런 수백 가지의 이야기들을 다시 읽었다.

 

무어라도 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정말이지, 다행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목표는 과거보다 좋아야 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