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d Dec 30. 2019

목표는 과거보다 좋아야 해?

♪백예린 - Not a girl

그냥 이런 얘기하지 말아요
앞으로의 삶 앞에서
변화는 너무도 많지만
변함없는 건 다 죽었어요



♪백예린 - Not a girl


아직 '2019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하루하고도 몇 시간이 남아있지만 월요일이니까, 기분으로는 오늘이 새로운 한 해의 첫날 같은 착각이 들어, 새삼 작년에 세웠던 목표를 쳐다보았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앨범 소개문에 있던 문장을 따와서 '거대한 세계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살아남기'라는 목표를 세웠더랬다. 이다지도 간단하면서, 이만큼 어려운 목표가 어디 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어찌어찌 이룬 걸까. 내년은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 과거 대화를 떠올렸다.




#

" 연봉의 70%를 저금하는 저축 법이 있다더라. 뭐 유럽이랑 미국의 상위층에서 유행하는 방법이라나? 2030대를 그렇게 보내서 40대에는 은퇴한다는 계획이라는데."


얼마 전, 부모님께 이른 연말 맞이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그런 사람들과 비교하여 보시기에 아들의 소비 패턴이 조금은 불안하셨던 탓이겠다. 웃으면서, 내일 내가 어찌 될지 모르고, 지금은 쉬이 한 치 앞도 챙기지 못하여, 오늘만 산다는 기분이라고 답했다. 오늘 이렇게 부모님과 식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며 웃어넘겼다.


20대에 스스로의 힘과 은행의 힘을 합쳐 집을 샀었다. 중소기업 월급쟁이 치고는 꽤 빠른 도전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때는 나도 막연한 4,50대의 어떠한 삶을 그리기도 했더랬다. 지금은 뭐. 더 욕심부리지 말고, 당장의 30대를 살자. 아니 오늘이라도 잘 살자. 여유가 있다면 내일 정도는 챙기자. 과거에 부린 욕심으로 여전히 은행에 돈을 돌려주는 삶이지만, 그래도 마음은 한결 가볍다.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마지막 발표 자료의 끝자락에는 여느 사업 계획이나 들어가는 목표가 적혀있었고, 당연하게 우상향일 것이다!라는 이야기였다. 여러 가지 기억과 발표 현장에서 '저희는 반드시 달성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변하는 와중에 그렇게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사실 어제보다 오늘을 사랑하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 따위의 문장을 노트에 썼었는데, 북북 지우고 고쳐 썼다.


'올해도, 그저 살아남기.'







마지막 2019년인 내일도, 2020년이 될 모레도.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저 살아남아야지. 좋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게 하루의 끝마다 아프고, 슬프고, 외롭고, 어쩌면 기쁨을 느끼며 하루를 살아남음만으로도 감사한 하루를, 한 해를 보내고프다는, 그런 역시나 간단하면서, 어려운 목표를 세웠다. 무엇도 안 했고, 멈춰있었다 한 해 내내 생각했지만 사실은 무려 삼백육십사일을 살아냈다. 대부분의, 대다수의 하루는 무거울 테고 나도 그렇다. 그것에서 살아남았다. 그걸로 되었다.


올해보다 좋지는 않지만, 나쁘지도 않을, 그걸로도 괜찮을 한 해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뿌듯해지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어떤 모습일지라도, 오늘의 내가 살아남았음에 감사하며.   

작가의 이전글 좋은 삶은, 버리는 것으로부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