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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Jan 07. 2020

처음으로 명함을 다 쓴 날

♪백예린 - Square(2017)

난 강한 사람이 아니야
점점 약해져 가는 기억들이 훨씬 많은 걸
나도 내가 사랑받을 수 없는 거 알아
그래도 '네'가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는지 알지?


♪백예린 - Square(2017), 여전히 애정 하는 라이브 영상. 인용한 가사 속 '네'는 노래 속 '네'와는 달라 기억하고자  따로 표시를 했다. 



어떤 자리에서든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는 명함을 건네는 편이다. 생뚱맞은 만남에서도 명함을 꺼내어 건네니 가끔은 그것 자체에서 웃음 포인트가 생길 때도 있지만, 건네는 내 입장에서는 사뭇 진지하다. 모든 관계에 있어서 실수하지 않겠다는 다짐과도 같은 의식이다. 명함에는 회사명과 이름, 직책과 연락처까지 친절하게 적혀 있어 이 명함을 받은 사람에게 어떤 실수를 했을 때 오게 되는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돌아온다는 마음. 그러면 자연스레 행동거지가 조심스럽게 된다. 






입사 이래 처음으로 기본으로 주어지는 명함 두 통을 다 사용했다. 200-300매 정도 되는 명함을 1년 조금 넘는 시간에 다 사용했으니 기억은 모두 못하지만 그만큼의 사람들을 어디에서든 만났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어제와 오늘은 그래서 직전에 쓰던, 직급만 한 단계 낮게 표시된 명함을 건네며 사실 이 직급처럼 살고 있어서 크게 개의치 마시라고 멋쩍게 웃었다.





 

작년은 참 많이 외로운 시간이었다.  

외롭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연애를 못한다던가 친구가 없다던가 따위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런 단순한 문제였다면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추상적으로 '바다 건너 화려한 축제를 외딴섬에서 구경하는 듯한' 기분이었다고 해야 하나. 모르겠다. 쓰고 나니 또 중이병스럽네. 알았다면, 어떻게든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런 실체가 없는 모호한 기분과는 별개로 두 통의 명함만큼 만남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부분 업무적인 만남이었겠지만 그 역시도 내가 나름은 자리에서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니까, 사실 어쩌면 그다지 회사와 사회에서의 나는 외롭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삶이 이 두 가지로 설명이 되니, 그러니까 외롭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착각을 잠시 해보았다. 






다음 주에는 새로운 명함이 나올 것이다. 그 명함의 개수만큼 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테고, 그런 관계들 속에서 또 혼자만의 나도 모를 울타리를 치고 살아갈지도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그 건네어지는 명함들 중 몇 장, 아니 한 장에서라도 '너는 외롭지 않아.'라고 끌어줄 수 있는 어떠한 우연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연애를 하고 싶다거나, 친구를 만들고 싶다거나 하는 그런 단순한 이야기나 소망은 아니다. 그래도 일을 하며 처음으로 비어버린 명함통 덕분에 다시 한번 살아있다는 기분은 느낄 수 있어 다행이었다. 






2020년 칠일 차의 기록 

좋은 날 +3

나쁜 날 -4


01.07 : 다행이었지만 오전 오후 어떠한 만남들이, 썩 유쾌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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