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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Jan 20. 2020

타인과의 대화는 언제나 재미있어

♪천미지 - 도피

화려한 빛깔들에 난
부끄러워져 웅크려버리고
추한 것들은 기회를 노려
내 안에 들어오려 하지


♪천미지 - 도피


주말 동안에는 꽤나 기다리던 게임을 하느라 사실 별 것 없이 지냈지만, 지난 금요일에는 나름 번잡한 번화가에서 누군가와 떠들 기회가 있었다. 꽤 오랜만의 번화가였고, 꽤 오랜만에 시더분한 잡담이었다. 사실은, 잡담을 하기에 적합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또 그렇게 하기 꽤 어울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대화를 하다 보면 으레 그렇지만, 잘 되는 듯하면서도 순간순간 찾아오는 지루한 듯한 공기랄지, 어색한 침묵이 흐르면 내가 무얼 잘못하고 있나 싶을 때가 있고, 그래서 사실은 조금 더 대화를 하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적당한 때 자리를 파했다. 횡설수설한 것 같다며 겸연쩍게 웃고 헤어졌다. 그런 것 치고, 오랜만에 일이 아닌 주제로 떠들어서인지 차가운 날씨와는 상관없이 조금은 시원한 기분이기도 했던 것 같다. 






조금씩 바뀌어봐야지 라는 마음으로 임했던 금요일의 마음과는 달리, 주말에는 있었던 약속도 취소하고 방에서 게임만 했던 것 같다. 꽤나 오랫동안 애정 하던 게임 시리즈의 발매 때문이라는 핑계였지만, 사실은 딱히 누구와 만나고픈 마음도, 대화하고픈 생각도 없었던 주말이었다. 그냥 역시나 나는 참 별로구나. 그 누구도 나에게 무어라 하지 않았음에도, 병이다. 어느 순간부턴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를 만난 다음에는 이렇게 혼자 굴을 파고 들어간다. 






사람과 사람의 대화와 관계 속에서 언제나 내가 호의를 받을 수도, 줄 수도 없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의를 받고프거나, 주고픈 마음도 없다. 한 길 사람 속 모른다고, 그러니까 누군가를 만나고 난 뒤에는 으레 나쁜 생각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모르지만, 살아온 삶에서 얻은 통계치 따위로 보자면 그럴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나무라기도 한다. 너는 잘 살았어. 너 정도면 그래도 어디 나가서 부족하지 않지. 충분히 자신감 가져도 괜찮아.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귀가 팔랑거리며, 어 그런가? 싶으면서도 꼭 이렇게 한 번 씩 고꾸라지는 것은 병이다. 글 쓰는 취미 하나 없었으면 어딘가 아픔을 떠들지도 못한 채 속이 문드러졌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굳이 아플 일을 찾아 하는 것에는 다른 것보다 '무관심' 이 가장 아픈 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살아가며 잘 겪지 못했을 수도 있는 그런 아픔이다. 그러니까, 분명 누군가를 만나면 아플 것을 알면서도 한다.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겠는가. 


지난주에 그러했던 대화의 끝자락은 조만간 또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사실은, 그러니까 별 것 아닐 수도 있던 하루였지만 나 혼자서 롤러코스터라도 탄 듯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했던 그런 날이었다. 재미없을 이유가 하나 없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면, 이런 마음의 병도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니다, 조금은 나쁘다. 나도 알지만. 






2020년 십구일 차의 기록

좋은 날 +10

나쁜 날 -9


01.17 : 나는 싫었지만, 날은 좋았다.   

01.18 : 세간의 평보단 게임은 재미있었다. 

01.19 : 세간의 평처럼 게임은 지루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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