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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Jan 26. 2020

아무도 관심 없는 나에게 응원을

♪Bump of chicken -  才悩人応援歌

잘하는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건
그걸 나보다 잘하는 누군가 있으니까
이전부터 알고 있었어
날 위한 세상이 아니라는 건
문제없잖아요? 한 명 정도 자고 있는 건



♪Bump of chicken - 才悩人応援歌  재뇌인( 능력 없는 사람 )을 위한 응원가


몇 천 편 정도의 평론작을 쓴 유명 평론가의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를 등 뒤로 들으며 연휴에 벼르던 게임의 엔딩을 보았다. 이 게임의 엔딩은 '천하통일'이다. 처음부터 상급에 이 게임에서 난이도 별 다섯 개에 해당하는 캐릭터를 골라 해낼 정도로, 열네 번의 시리즈에 거쳐 이 천하통일이라는 엔딩을 수백 번은 보아왔으니 이제는 질릴 법도 한데, 아마 이 글들을 쓰고 나면 다시 켜서 새로운 천하통일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까 명절이라는 시간에 얼마 만에 쉬는 거지? 작년 추석만 해도 하루는 사무실에 나갔던 것 같은데. 






보통 마지막 보스가 어려운 게임과는 정반대로 중반 이후부터는 조금 긴장감이 떨어지는 감이 없잖아 있는 게임인지라 손은 게임을 조작하면서 머리로는 그 평론가가 써냈다는 수많은 글들을 생각해보았다. 내가 3년 반 정도 되는 시간 동안 글쓰기로 밥벌이를 할 때 '돈이 되었던' 글을 세어보니 삼백 편이 조금 덜 되었던 것 같다. 그중에는 이삼만 원의 가치의 값싼 것들도, 그만한 정성을 들였던 것들도 있었으니 덜어내어 보면 백 편이 좀 넘으려나. 지금의 글만 읽어봐도 모두가 알겠지만, 당연하게 글로 돈을 버는 것을 그만둔 건 글을 못 써서다. 


물론 꽤 많은 수의 글을 포털의 메인에 올려 보기도 했고, 덕분에 포털사에 글도 팔았던 경험 덕에 지금의 밥벌이를 하고 있지만 분명한 건 난 글을 못 쓴다. 그렇기에 프로그램에서 가벼운 리액션 정도로 치부되었던 몇 천 편의 평론 에피소드가 주는 무게감에 대해서는 충분히 안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아마 그 평론가가 예능의 중반 즈음 이야기했던 것은 이제 글로만 평론을 하는 시대가 지나 자신도 목소리로 대신한다던가, 관객과의 만남 같은 것을 한다는 것이었다. 유명한 작가들도 이제는 작업실에서 글만 쓴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인회라던가 북 토크 같은 것은 기본인 시대가 되었다고. 그러니까, 사실 글로 밥을 벌어먹고 살겠다는 것을 포기한 것에 대해서 후회한 적도, 아쉬워한 적도 없다. 그때는 그때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고, 그뿐이다. 그리고 내심 이럴 것 같았다. 글로만 밥 벌어먹기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사실 지금도 글을 쓰고픈 것은, 쓰는 것은 개인적인 취미생활이자 욕심이지만 어느덧 십 년이 되어 글을 쓸 때의 몇 배의 시간을 보낸,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새로운 이 일은 또 다른 자부심과 같은 것이다. 서너 편 정도지만 부끄럽게 지금에 일에 대해 못 쓰는 글로도 기고했었으니, 아예 헛일하며 살았던 건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고하자면, 지금 하고 있는 일도 그렇게 썩 잘하진 못한다. 그래서, 꽤 긴 시간 동안 살아남기 위해, 그 사실을 애써 부정하기 위해서 문자 그대로 삶을 갈아 넣다시피 일했다. 주말이나 밤이라는 단어는 사치였고, 그 시간 동안 인연도 가족도 모두 사라졌다. 겨우 얻은 건 서울에 몸 뉘일 집 정도. 그것도 반쪼가리. 언젠가는 이에 대한 서러움에 사무실에서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그 이야기를 한 날도 새벽녘에 택시를 탄 채 집에 귀가했던 기억은 몇 안 되게 기억하고 있는 야근 택시의 기억이다. 


물론 십 년의 시간을 온전하게 갈아 넣진 않았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월급쟁이의 사춘기병에 걸려, 아마 일이 년 정도는 퍽 방황했던 기억도 있다. 지금도 그런 사춘기를 겪는 걸까 하고 요즘에 많이 생각하고 있는데, 또 그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적어도 '이 일은 나밖에 할 수 없지. 내가 있으니까 이 일이 돌아가는 거야.'라는 일종의 자만 섞인 마음도 함께였다. 지금은 그냥 못한다. 못해서 주저앉은 거다. 






남들이 보기엔 미련 가득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저 위의 서러움 뒤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 지금은 사무실에서 많은 것들을 내려놓았다. 자칫 잘못하면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을 잘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자만할까 봐, 또 욕심내서 내 삶을 갈아 넣을까 봐 보는 사람들에게 굳이 안 해도 될 말들로 삶 대신 나를 깎아내려가며 바라본 사무실은, 일은 사실 별 것 없었다.

 

내가 없어도 괜찮을 것만 같은 일들이 넘쳤으며, 나 대신에 누군가가 해도 문제없는 일들이 많았다. 하루는 작정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있어본 날도 있는데 분명 그 일의 책임은 나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저, 여행이나 휴가철에 한 번 씩 이벤트처럼 걸려오는 업무 전화가 그나마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 이유인 정도의 기분이다. 물론, 이번 연휴에도 업무 연락을 두 건 정도 받았더랬다. 살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숨이 붙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일에서 손을 놓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재능도 없는 녀석이 쉰다는 것은 그대로 그 업계에서 손을 놓겠다는 말과 같은 말인 것 같았고, 실제로도 대학생 시절, 글을 쓰는 일을 하다 한 달 정도 공무원 공부를 하겠다고 잠깐 도피했던 때가 있었는데, 귀신 같이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지는 일감을 보고 무서워져서 억지로 병행을 했더랬다. 그리고 그것이 글과 공무원 공부 두 가지를 모두 놓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더랬지.






글을 썼을 때처럼 지금 일도 잘하지 못하는데도, 주목받지 못해도, 나 말고도 대신할 사람들이 많아도 사실 그때 그 날처럼 지금 일을 깔끔하게 손을 털지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미련이 가득해서일 테다. 그래도 십 년이고, 내 갈려버린 삶의 현재니까. 모든 것들을 포기하려고 발버둥 치며 일 생각 안 하고 쉬는 연휴를 삼일째 즐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업무와 관련된 것들로 시선이 갔다. 어떤 인사이트가 담긴 기사를 읽는다던가, 요즘 유행한다던 영상을 주욱 살펴본다던가 하는 그런 것들. 물론, 게임을 하다 쉬는 시간에. 무언가 바뀐 것 같은 기분이지만. 






그러니까, 사실 친척도 안 만나고, 방에만 처박혀서 온라인에서 천하통일이나 하는 내 삶이 레전드다 라며 자조적인 생각을 하고 보냈지만 동시에 이렇게 산다고 해서 죽지는 않는구나 싶으면서 또 동시에는 나는 일을 못하니까, 좀 더 잘할 수 있는 것들이 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다. 십 년이나 해서 더 할 게 없을 것만 같았는데. 나는 여기까지다 라고 꽤 예전부터 생각했었는데. 못한다는, 못났다는 사실을 새삼, 온전히, 혼자서 깨닫고 나니 오히려 개운해진 기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다 쓰면 또 게임을 해야지. 모레는 출근이니까.  며칠 째 글도 쓰기 싫었는데 ( 그래서 사실 두 편은 지웠지만 ) 그래도 이만치 쓰고 보니 기운은 차린 것 같다.   





  

2020년 이십육 일 차의 기록

좋은 날 +13

나쁜 날 -13


01.22 : 사무실에서 나쁜 일이 있었다.  

01.23 : 사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급 슬퍼져서 글을 지웠다. 

01.24 : 아무것도 안 했고, 아무 일도 없었다. 그래서 좋았다. 

01.25 : 차례는 여전히 좋아하지 않는다. 

01.26 : 천하통일을 했다. 좋은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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