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R - Floor
내 차가운 마음을 꺼내어
보여주길 바라나요
꼭 숨겨놓은 것들도 찾을 수 있나요
그댄 실망할 거예요
어릴 적에는 일기를 쓰는 것을 정말 싫어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학교에서 매일 같이 검사하는 일기장에는 그림도 함께 그려야 하고, 나는 그림을 정말 못 그리는 아이였기 때문에 가끔은 내 일기를 읽고서는 어머니가 대신 그려주실 때도 종종 있었더랬다. 그래도 일기를 잘 써서 스티커 따위를 모으면 공책이랄지, 연필 같은 것들을 주었던 터에 그것을 위해서라도 나름 열심히 썼더랬다. 누군가가 괴롭혔던 것을 아무렇지 않게 일기에 써서 냈다가, 선생님에게 혼난 그 아이가 또 괴롭히기도 했던 정도로 아무런 고민 없이 솔직한 그런 일기였다.
올해부터 '좋은 하루를 쌓아 좋았던 한 해를 만들자'는 마음으로 하루에 좋았던 날과 나빴던 날을 기록해 나갔다. 처음에 시작할 때 즈음에는 나빴던 날이 엄청 쌓이겠지라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시작했었지만, 생각보다는 꽤 좋았던 날도 비슷하게 있었기에 신기했다. 어릴 적 일기처럼 누군가에게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좋은 날이 쌓여서 공책이나 연필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서 스스로 일기라는 것을 쓴 것이 언제였더라. 중학교 삼 학년 정도였을 것 같다. 당시 자물쇠가 달려 있는 보라색 일기장을 어떤 생각에서였는지 구매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썼던 것 같다. 산에 혼자 올라가서 고등학교 생활은 어찌 되는 걸까 따위의 끄적임이나, 당시에 풋풋하게 만났던 누군가와 빵집(...)에 갔었다는 이야기. 20년이 지난 지금도 꽤 떠오르는 일기가 많은 것을 보면 일기는 확실히 기억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에서야 그렇게 일기장에 자물쇠를 달지 않아도 될 만큼 시시한 인생이다 보니, 딱히 장소를 가리지 않고 써 내려가는 편이지만, 요즘에 들어 문득 정말이지 쓰고픈 말이 없다. 어떤 때에는 하루에 서너 개의 일기도 쓸 정도로 하고픈 말이 넘쳤었는데, 어느 순간인가부터 꼭 '누군가 시켜서 쓰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하기도 한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그저 내 이야기를 쓰는 일기인데, 묘한 이질감이 들기 시작했다고 해야 하나.
가장 큰 이질감은 억지로 좋았던 일을 찾아 한 줄을 적어 내리려는 것에서 온 것 같다. 그렇게까지 해야 내가 좋은 나날을 보냈다는 것으로 기억을 하게 되는 걸까 하니 웃음이 났다. 그럼 마치 일기를 지어내듯 삶도 지어내는 거잖아. 보정 어플이 당연시된 사진, 그 사진 중에서도 멋있고, 감성적이고, 행복한 순간만 올라가는 SNS. 나는 그저 글뿐인데, 그것도 시시한 하루를 주제로 하면서 무얼 그렇게 억지로 행복을 빚어내겠다고.
아마 이런 글들을 머언 뒤에 읽었을 때 또 이 날의 하루나, 생각이 떠오를 테다. 적어도, 그때 떠올리게 될 하루가 지금의 하루와 다르지 않게 그만 두기로 했다. 쥐어짜야만 행복하다면 그것도 관둬야지. '쥐어짠다'에서부터 행복하지 않아. 행복은 현실에서 찾아야지. 글자는 어디까지나 글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아 차마 써지지 않았던 며칠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