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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Feb 19. 2020

미술학원에서 쫓겨났던 날

♪ ROOKiEZ is PUNK'D - Complication

끝없이 퍼져가는 새하얀 내일에
무엇을 그려야지?
현실이 물들이는 새까만 내일에
무엇을 그려야지?



♪ ROOKiEZ is PUNK'D - Complication


학원이라는 것은 보통 숭고한 뜻보다는 어떤 영역이 부족한 누군가를 가르침으로 성장을 시키고 자신들은 돈을 버는 것에 치중이 되어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선생님 개개인의 소명의식을 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러한 집단이 생긴 수요와 공급 따위의 건조한 관점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직업이 그렇지만. 


이런 학원에서 주위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잘리는 것은 꽤 쉬운 일이 아닌데, 어릴 적 미술학원에서 잘린 적이 있다. 이 아이는 아무래도 소질이 없어요 라며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던, 그런 이유 따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만큼 소질이 없었나 보다. 정말이지, 지금도 그렇지만 미술은 지금도 못한다. 보고 그리기도 못하는데, 상상하며 그리기는 더욱이 안 되는 영역이다. 






삶은 도화지와 비슷해서 무언가를 그리며 살아간다고도 표현하곤 하는데, 학원에서마저 잘릴 실력을 보유한 나로서는 당연하게 삶이 그토록 어렵다. 꽤나 마음을 다잡고 그려보려고 하지만 그것이 또 쉽지가 않다. 다행히 삶은 학원과는 달라 잘릴 일은 없지만, 반대로 적성에 안 맞다고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다잡으려고 해도 무너질 때가 많고, 그럴 때면 글자마저도 나오지 않게 된다. 아무것도, 하루에 있었던 이야기조차 보고. 떠올려 그리지 못했던, 그런 시간들이었다.  






정신 차려야지. 

무엇이라도 머리에 밀어 넣고 싶어서 미루고 미루던 < 인간실격 >을 다시 읽었다. 작년 겨울 즈음, 다자이 오사무가 즐겨 찾던 긴자의 술집을 다녀오면서 꼭 다시 읽어야지 생각만 하다 떠올린 김에, 지금의 기분과 비슷한 삶을 그린 책을 읽어 내려갔다. 주인공 '요조'의 삶은 나와 다르지만, 가면 뒤에 살고, 무리에서 빗겨 난듯한 삶을 표현하는 묘사에서는 또 비슷한 것 같은 기분을 주어 좋아하는 역이다. 영화에서도 이쿠타 토마랄지, 오구리 슌이랄지. 좋아하는 배우들이 맡아준 덕에 더 애정이 가는 그런 소설 속 주인공.


그림을 시작하려면 우선, '무엇을 그릴까?' 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텐데, 무엇을 그려야 할지 잊어버린, 잃어버린 터에 그저 시간에 따라 흐르듯 살아간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막연하게 연초에는 행복해져야지, 따위라던가 잘 쓰지도 않던 버킷리스트 따위를 만들어서 그것이라도 그려보자며 마음을 다잡았는데, 한 달 반 정도 지난 지금 즈음엔 그 마저도 뭐랄까 둥둥 떠 있는 느낌이다. 이게 행복한 건 맞는 걸까, 아니면 내가 행복하기 위한 노력을 덜 기울인 걸까. 애초에, 사람은 꼭 '행복'해야만 할까.






지난주엔, 어떤 사람으로부터 '이건 실패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록 아마 아래 꾸역꾸역 기록하고 있는 'ㅇㅇ일차의 기록'에 한 줄로 블라블라 써지고 나쁜 날에 -1을 추가하면 끝날 정도의, 그런 시시한 삶이다. 분하냐고 하면 분하지만, 반대로 한 줄로 정리될 정도로 시시하기도 하단 이야기다. 늪에 빠진 기분이다.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사라져 버리는 기분. 






여기까지 쓰다,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역시 그만두기로 했다. 오늘의 '그림'도 실패다. 북북 마지막 문단을 지워버렸다. 대체로 이런 기분으로 살아가는 요즘은, 정말이지 '실격'이다. 잘릴 만도 해. 






2020년 오십일 차의 기록

좋은 날 +24

나쁜 날 -26


02.15 : 누군가에게 삶을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02.16 : 그래도 애써 괜찮다고 다독인 하루였다. 

02.17 : 역시나 그래도 가라앉아 오랜만에 혼술을 했다. 

02.18 : 나름의 노력을 보상받은 기분의 하루였다. PT를 잘했으니까.

02.19 : 와중에, 위로받고, 위로하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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