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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Feb 14. 2020

살아있는 어느 날

♪あいみょん - 生きていたんだよな

"목숨을 다해 열심히 살아"
라는 말, 그냥 말 뿐이지.
모든 것을, 용기 내어
그녀는 하늘을 난 거야.


♪あいみょん - 生きていたんだよな ( 살아있던 거구나 )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말 가끔이지만, 어제 새벽에는 꽤 깊게 생각했던 주제였다.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아플 때까지 생각하다 새벽 다섯 시, 어머니께서 새벽 기도회를 가시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주제는 사실 짧다. 단순하다. '나는 왜 살까?' 아닌가 정확하게는 '나는 왜 살고 있을까?' 였었나. 





고등학생 시절, 노란 테이프가 둘러진 사고 현장을 지나갔던 때가 있었다. 아스팔트는 움푹 파여 있었고, 채 치워지지 못한 흔적들을 보며, 지금에서야 그때의 감정을 확실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의외로 꽤 덤덤하게 지나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뒤늦게서야 그것이 누군가의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을 티브이 속 뉴스와 동네 주민들의 수군거림에 깨달았었더랬다. 그때는 그럼에도 덤덤했지만, 오히려 지금은 새벽녘의 그런 생각을 떠올릴 때면 그 날의 모습도 함께 떠오르곤 한다.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정말 머릿속에 그리던 모습을 실현한다던가 하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매번 다짐하지마는, 이런 날은 정말이지 살았지만 살아있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전에는 삶에 대한 공포감이 꽤 선명했더랬다. 실패에 대한 공포라던가, 책임에 대한 공포라던가, 관계에 대한 공포 같은 것들. 이런 것들을 놓을 수도 없고, 잡으려고 해도 아파서 끙끙거렸던 예전과 비교하자면 지금은 제법 거리를 두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러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모든 이유를 멀리한 지금, 알 수 없는 이 기분은 또 다른 두려움을 안겨준다. 아, 뭐 이러다 심장에 이상 생기는 거 아니야? 정도겠지만. 






그렇게 종일 기력이 없었다. 

우울증인가. 우울증이겠지. 그래도 그렇게 티 내지 않는 법은 알아서 그나마 다행이라며 하루를 꾸역꾸역 시작했다. 그런 몰골로, 어떤 회의에 참석을 했다. 업무와도 과거의 어느 때에 비하면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삶인지라, 실로 어색한 자리였다. 무언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는 곳 아닌가 싶은 자리였으니까. 당연하게도 일종의 투명인간과 닮은 무언가처럼 앉아있었다. 우습게도 가장 마지막까지 그 회의 자리를 지켰는데도 나는 투명인간이었다. 


그제야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라며, 알 수 없는 울컥임이 일었다. 기분이 나아진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 겁이 많아 모든 것을 버릴 용기를 가지지 못한 탓이다. 그렇게 싫어했던, 그래서 버렸었던 찌꺼기 같이 남은 마음 때문에, 우습게도 살아있음을 느낀 하루였다. 






2020년 사십오일 차의 기록

좋은 날 +21

나쁜 날 -24


02.11 : 누군가가 다가왔고, 습관처럼 밀어낸 날이다. 툭, 하고 끊겼다.  

02.12 : 애씀을 인정받은 기분이라 개운해졌다.  

02.13 : 그 사실을 부정당하여, 더욱 가라앉았다. 

02.14 : 또 그런 날이다. 무미건조한, 그런 날. 애썼다. 



+

노래에서는 그런 결심을 했던 사람 역시, 사실은 정말 열심히 살았던 누군가였다고 한다. 정말 이런 기분이 들 때면, 습관처럼 틀어놓은 채로 멍한 채로 듣는 그런 곡이다. 나 스스로가 용기가 없는 겁쟁이라 다행이라고 안심하면서도, 그럼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것 아니나며 한심하다며 자책하게 되는 그런 곡. 한심하기는. 겁쟁이라서 살고 싶은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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