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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Feb 10. 2020

잿빛에서 나는 향을 맡고

♪Mot-재와 연기의 노래

밝고 뜨겁게 아프게 타오르던 날들
재와 연기의 노래로 사라져
흐르던 눈물도 상처도 빛나던 추억도
재와 연기의 노래로 흩어져



♪Mot-재와 연기의 노래


작년 말 즈음에 침대를 샀는데, 침대가 공장에서 바로 출고가 된 탓인지 매트리스에 가득 밴 형용하기 어려운 냄새가 방에 가득해졌다. 고무 향이라고 해야 할지 처음 맡는 냄새라 처음에는 머리마저 아파오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이 추운 날 종일 창문을 열어놔보기도 하고, 요즘 유행한다던 피톤치드 방향제를 사서 한 통 가까이 뿌리기도 했는데, 여전히 이 잠을 앗아가는 불쾌한 냄새는 방을 떠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방법이 있을까 검색을 해보다, 유튜브에서 요즘 '힙한 사람들이 쓴다는' 인센스라는 것을 사보았다. 아, 검색 결과가 1년 전이니 지금 이 시점에선 힙하지 않을 수 있지만 여하튼 향이라도 피워야 이 냄새가 사라질까 해서 시험 삼아 얼마 전 구매했더랬다. 






정말 명절에 맡을 수 있는 향냄새 같기도 하고, 또 다른 묘한 향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꽃이랑 향을 같이 불태운다면 이런 향이 날까 싶은 그런 향이었다. 언젠가, 가보진 않았지만 인도의 어딘가를 본떠온 듯한 지하의 집시스러운 좌식 바에서 나는 그런 향과도 닮아있었다. 


아침에 나갈 때 하루의 안녕을 고하듯 한 번 불을 피우고, 밤에 잠에 들기 전 새벽 전 즈음에 다시 한번 하루의 안녕을 감사하듯 한 번 불을 피우고 잔 방에는 그렇게 나도 모를 향이 가득해지고, 매트리스에서 나는 냄새를 지우지 못한 채 뒤섞여 가뜩이나 부족한 잠을 더 뺐어갔다. 그래서 사무실에서도 나도 모르게 까무룩 하고 잠이 들기도 했다. 사무실에서는 무미건조한 냄새가 - 천정의 난방에서 모를 냄새가 나는 것만 같기도 했고, 이게 무미건조한 냄새일까 - 났다. 그래서, 편히 잠들면 안 될 곳에서 잠이 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에 출근 전 받침대에 가지런히 놓였던 잿더미에서 나는 향과 같은 기분의 날이었다. 이미 재가 되어버린, 향나무? 라 불리기 무엇하게 변한 재가, 아무 향도 내지 못한 채 잠만 빼앗아간 것에 심통이 나, 남은 것들은 책상 서랍에 넣어놨다. 딱, 그런 기분이 들었던 하루였다. 그냥, 재와 같은 마음이었다. 아무 생각도, 아무 느낌도 내지 못하는 그런 마음이다. 그저, 잠이 자고 싶다. 그래도, 잠깐이나마 그 힙하다는 나뭇가지가 내었던 향은 그리워, 아쉬운 대로 사무실에서 애꿎은 탈취제만 겉옷에 칙칙 뿌려댔던 날이었다. 


이 이야기 뒤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있고, 함께와 혼자 따위의 그런 0과 1 같이 기계적인 이야기도 섞여 있다. 매트리스의 냄새와 인센스의 향이 뒤섞여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 것처럼, 그런 날이었다. 잿더미에 원망하고, 숨고, 치웠다가, 결국 다시 향을 피워 잿더미를 만드는. 그런 알듯 모를 듯한 기분. 똑바로 쓰기 싫어서, 누군가에게 알리기도 무엇하여, 나만 아는 향과 냄새의 탓으로 돌렸다. 






2020년 사십일일 차의 기록

좋은 날 +20

나쁜 날 -21


02.08 : 아버지께서 얼굴에 찰과상을 입으셨다. 넘어지셨단다.

02.09 : 기분 전환으로 꽃을 사서 집에 장식했다. 봄과 비슷한 분홍빛 꽃. 

02.10 :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에 불효 막심하게, 기분은 잿더미다. 사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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