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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Mar 18. 2020

아직 어른이 덜 되었다는 증거야

♪amazarashi - 穴を掘っている

인생은 그런 걸지도 몰라
포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그렇지 않으면 멍청한 인간이 될 거야
그런 뒤엔, 포기를 모르는 쩨쩨한 인간이
되어버리겠지



♪amazarashi - 穴を掘っている ( 구멍을 파고 있어 )



1. 

어릴 적 유치원의 체육복은 흰색이었다. 흰색의 체육복이 흙밭에 굴러 갈색에 가깝게 변했을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어딘가에서 굴러 넘어졌다' 고 이야기하는 것이 최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가 봐도 굴러 넘어진 상처가 아니었지만, 어린 마음이었는지 무엇이었는지 모를 그 말에 어머니께도 혼났던 기억이 있다. 


2.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초등학교 미술 시간, 허수아비를 만드는 시간이 있었다. 집에서 흰 헝겊에 솜을 넣어 미리 머리를 만들어오는 숙제가 있었는데, 힘센 아이가 그 '머리'를 터뜨려 버렸다. 자신이 안 해왔으니 내 것을 달라고 한 '부탁'을 안 들어줬다는 이유였다. 슬펐던 나머지 집으로 돌아가 선생님이 보시는 일기장에 그 날의 일을 적었다. 우습게도 아무런 일도, 그 아이의 사과도 없었다. 


3. 

고등학생이라고 별반 다른 것은 없었다. 집에 돌아오니 나도 모르는 새 교복 셔츠에 욕지거리가 적혀있었다. 내 뒷자리의, 힘센 아이의 뒤를 따라다니던, 별 볼 일 없던 양아치의 작품이겠거니 했다. 세탁물에 보일 수 있게 펼쳐두었다. 나름은 사춘기, 부모님께 이런 괴롭힘을 당한다고 말로 하기엔 부끄러운 기록이었기에 최소한의 외침이었다. 이틀 후에 깨끗하게 빨린 셔츠가 방에 걸려있었다. 그뿐이었다. 고등학교 생활의 8할은 엎드린 채 살았다. 어두웠다.  





여러 가지의 기억들이 있겠지만, 소소하게 기억하는 이 세 가지의 기억 덕분에, '기대하지 않는 삶'을 배웠다. 당시 10대였던 나로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만으로 벅찼고, 학교라는 틀을 벗어나서부턴 과거로부터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만으로도 가득 차서 더 나은 삶이라던가, 청춘을 즐기는 삶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저 눈 앞에 무언가라도 함으로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에 급급했고, 그만큼 포기도 빨랐고, 괜찮았던 것 같다.  


기대가 섞여있는 사람과의 관계는 그중에서도 가장 무섭다. 아무리 친해도 '타인'이다. 내가 아무리 좋아지는 감정이 들었더라도 결국 잘려 나가는 시간은 서로에게 언젠가 다가올 테고,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 보통 잘림을 당하는 쪽은 나였기 때문에, 애초에 거리를 두게 되었다. 거리를 두면 잘리는 아픔을 겪을 일이 없다. 가끔 건방지게 가까워지려고 하면 여지없이 잘리거나,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니까. 원래 나는 그런 사람이구나 하면서 다시금 깨닫고는 한다. 






언젠가 '어르신'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과 명함을 주고받고, 서로를 익히게 되지만 지금 명함을 주고받은 사람들 중 얼굴과 이름이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물어오셨다. 1% 라도 나의 어려움이나 아픔에 소주 한 잔 건네주면 다행인 것이 관계이며, 아무리 '가족 같은 회사' 라도 너의 성과 여부에 '남' 이 되는 것이 사회라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셨다. 






어제는 실수로 눈물이 날 뻔했다. 서른여섯이나 되어 누구 앞에서 울 뻔하다니. 부끄러울 따름이라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다행히 마스크를 쓴 채라 티는 덜 났을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이 무엇이길래, 나에 대해서 잘 모르고 관심도 없는 당신이 무엇이길래 나에게 자신의 잣대를 들이대 함부로 말을 하냐는 이야기를 최대한 덤덤하게 이야기 하고팠지만, 아마 감정이 조금 새어 나와 격해졌던 것 같다. 오히려 상대방 쪽이 덤덤하게 이런 나의 기분과는 관계없이 자신이 가진 자로 나를 난도질했다. 


넝마가 된 채로 회의실을 나와, 생각해보니 참 아찔했다. 그저 지나왔던 시간을 알아달라는 생떼 부리기 같은 감정인가? 빛나진 않지만 저 아래 흙밭에서 여전히 삽질을 하고 있는 나를 봐달라는 발악이었을까? 무엇을 바라며 살진 않았는데, 왜 그렇게 모질게 이야기하냐는 억울함이었던가. 그렇게 어려서부터 감사하게도 배워왔던 것을 어른이 되어서야 까먹는 일이 많아진다.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 원래 이런 것이 삶인데. 






기대를 해버린 탓이다. 

누구의 탓도 아닌, 그저 내 문제다.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마음 어딘가에선 무언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자라고 있었나 보다. 어제는 기대와 함께 먹었던 것을 모두 게워냈다. 아침에 이런 시기엔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아침상을 바라보며 잘 먹겠다고 웃었다. 그런 것이 삶이다.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은 식사였다. 물론 아직 어른이라 불리기엔 부족하여 밖에 나오자마자 소화제를 먹었지만 언젠간 돌도 씹어먹듯이,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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