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d Mar 24. 2020

짬밥에 대한 고찰

♪새소년 - 난춘 (亂春)

오 그대여 부서지지 마
바람 새는 창틀에 넌 추워지지 마
이리 와 나를 꼭 안자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새소년 - 난춘 (亂春)


심장이 꽈악 죄어지는 기분이 들어 눕기가 무섭다. 처음엔 살이 더 찐 탓에 자리에 누우면 살들이 가슴을 짓누르기 때문에 그런가 하는 우습지도 않은 상상을 하며 두려움을 떨치려고 했지만, 어려서부터 살찐 체질이라 그럴리는 없지 - 하며 누운 채로 고개를 이리저리 뒤척인다. 이유야 명확하지 않지만, 보통 다음 날에 있을 이런저런 것들에 대한 생각이 뭉친 탓이겠거니 하다 보면 눈을 뜬다. 잠에서 깼다 해야 할지, 눈을 떴다고 해야 할지 미묘한 날의 반복이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감안했을 때 곧 꽉 채워 '십 년'을 직장 생활을 했고, 4-5년 정도 아르바이트가 아닌 이런저런 프리랜서 활동을 한 것도 대충 경력으로 쳐보자면 같은 종류의 일을 한 지 십 년은 이미 넘었다. 아마 조금씩 해오던 일들은 다르겠지만, 주업으로 삼고 있는 일과 관련되어선 분명 십 년이 넘었다. 주변에서 보면 한 업을, 한 직장을 십 년 정도 경험했다고 하면 여러 가지 꼬리표가 붙더라. 


요즘 시대에 흔치 않은 경력이라던가, 요즘 시대에 뒤떨어진 선택이었다던가. 애사심이 많은 직원이라던가, 갈 곳 없어 고여버린 사람이라던가. 보기 나름이고, 평가하기 나름이지만, 그래도 보통 이 정도의 시간을 쏟고 나면 자기 영역에서는 갓 '전문가'의 이름을 단 햇병아리 수준으로는 봐주는 것 같다. 그러니까, 어찌 되었든 적어도 일 인분은 할 수 있는 정도, 의 타이틀은 얻은 셈이다. 






그런 것에 비해서 언제나 이야기하거나 고민하는 주제는 '무엇으로 벌어먹고 사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정말이지, 무엇으로 벌어먹고 사나. 분명히, 십 년 동안 한 무언가가 있는데도 무섭다. 언젠가는 증명해 보이기 위해 '저는 이런 걸 할 줄 알아요. 이런 일을 했답니다.' 따위의 자소서를 끄적여 바깥에 누군가가 나를 '사 가는지', '팔리는지' 확인해보고는 했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재능충'과 '노력충'이 있다면, 이도 저도 아닌 터에 '시간충' 정도구나,라고 요즘엔 생각한다. 어려서부터도 단거리는 꼴찌였지만, 오래 걷기 따위는 잘했다. 하지만 세상은 능력으로 돌아가지 시간으로 돌아가지 않으며, 보통 능력이 있는 사람은 보통 자신의 시간도 잘 쓴다. 토끼와 거북이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동화일 뿐이다. 



그런, 기분을 하루 종일 지울 수가 없어 겁이 났다. 

내 십 년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하면, 뭐라 답할 수 없게. 

내 주변은 그렇게 이루어져  있었다.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십 년을 떨며 보냈다.  


 

그러니 억지로나마 애써 살아왔던 시간을 위안삼아 하루를 살고, 하루가 다가오는 시간에 떤다. 동네에는 벚꽃이 폈는데 오늘은 여전히 그렇게 몸이 떨리게 추운 날이었다. 누군가가 정말 날씨가 따뜻하지 않냐 인사를 했다. 무어라 답할지 고민하다 그냥 그렇다고 답했다. 


아직은 외투가 어색하지 않은 계절이니까 떠는 것이 정말 추워서인지 어쩌면 시간을 가면 삼아 겁을 감추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 오늘 침대에서도 부들부들 떠는 추운지, 무서운지 모를 밤이  찾아올 것이고, 그렇게 또 아무렇지 않게 내일도 올 것이다. 이 즈음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오늘도 살아남은 거겠지. 




어떻게 겁 없이 일했더라. 

짬밥을 거꾸로 먹은 탓인가 보다. 

작가의 이전글 아직 어른이 덜 되었다는 증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