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른이 덜 되었지만, 하고 있는 일은 어른을 흉내 내는 것 같은 일들이 가득했던 하루였다. 원래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을 만들거나, 만들 것을 설득하는 일인데, 그런 일들 있지 않는가. 여기 있던 건 저기로 옮기고, 눈 앞에 있는 것들에 가격과 순서를 달아놓는 그런 일들. 그런 것들로 가득 찼던 하루였다. 이런 일들에 보람을 느낄 때도 가끔은 있지만, 사실 그것도 하루 이틀 일이다. 보통은 본래의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 하는 일인데, 이게 좀처럼 나아질 기색이 없으니, 사실 흉내내기라고 부르는 거다. 정말 어른이었다면, 무언가 달라졌겠지. 어른이라고 해서 별 수는 있겠냐마는.
그런 것 치고 요즘의 시대에 이다지도 바삐 돌아가고 있는 회사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면 주변과 회사에 감사하면서도 신기하다. 바쁜 것만으로도 감사하긴 하지. 무엇이라도 헛헛함을 채우기 위해서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척하는 사람들이라고 하기엔, 바삐 손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래도 참 잘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덩치에 비해서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 모인 회사이기 때문에 흔히들 말하는 '열정'으로 불리는 것이 폭발했나, 뭐 그런 건가 보다 싶다. 워라밸 이후로 사라진 줄 알았던 그런 단어. 아니면, 그런 이름을 방패 삼아하는 고역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은, 그 와중에 힘듦을 토로했다는 직원에게 힘들었겠다며, 그러면 업무 강도나 시간을 조정해서 잘 갈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자신이 생각이 짧았다며, 그때 그런 이야기를 한 건 자신이 잠시 정신이 빠진 탓이라고 손사래를 치는 직원을 보았다. 그(녀)가 그렇게 대답한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자의로, 타의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힘든 시기에도 힘들게 일한다는 것이다. 그 사실은 변치 않는다.
그런 고민들을 하는 와중에 중간마다 날아오는 후배들의 고민을 들어보면 도대체 자신들이 노력했던 결과는 어디로 흘러갔냐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된 건지. 일이 문제인가, 구성원이 문제인가, 프로세스가 문제인가, 아니면 자신이 문제인지. 이제는 알지 못하게 된 터에 고민과 근심만 늘어난 사람들의 대화였고, 그 질문에 나도 속 시원하게 답하지 못했다. 아직 어른 흉내밖에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비단 나만 안고 있는 고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분명 어디선가는 주변의 풍경과 비슷하게 수많은 사람들이 밤을 밝히고 있을 테다. 서울의 야경이 아름다운 건 우리 같은 사람들 때문이라는 웃지 못할 소리를 기억한다. 언젠가 서울 한 복판의 대형 건물에서 일을 하던 시절, 자정을 넘겨 퇴근하며 오늘도 보람찼다며 밖으로 나와 건물을 보았을 때, 수많은 창문에 켜진 불을 보며 숙연했던 기분도 떠오른다. 어떤 회사는 그 지역의 '등대'라고 했었던 슬픈 이야기도 보았더랬지. 각자의 모습으로 그렇게 자신의 피와 땀과 눈물로 건물을 밝히는데 쓰고 있다.
오늘의 일에는 필연적으로 '돈' 이야기가 빠질 수가 없었다. 어른 흉내를 내는 일의 꽃은 역시 돈이다. 흉내라고는 하지만 이 일의 요지는, 이 돈이 어떻게든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걸 텐데, 이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의 피땀눈물은 어디로 흘러가서 이 종이 쪼가리, 그저 나열된 숫자 하나 제대로 피우지 못하는 걸까. 왜 그럼에도 모두 다 돈이 없다며 아우성일까. 나는 오늘 만났던, 열심히 하는 그들에게 돈을 꽃피우기 위해선 조금 더 피땀눈물을 짜야한다는 말을, 되지도 않는 미안하단 말에 희석시켜 함께 전했을까.
어른 흉내를 내려고 애쓴 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우리의 피는 어디서 누가 빨아가길래 밑바닥부터, 꼭대기까지 모두 돈이 없다는 아우성만이 주변에서 들리는 걸까. 어디에서부터 문제인 걸까.
"사실 우리는 애새끼잖아요."
그래서다.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어, 오늘도 할 수 있는 탓은 어른 흉내밖에 못 내는 어른이 아닌 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