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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Apr 11. 2020

고래도 칭찬이면 춤을 춘다더라

♪Tokyo jihen - 入水願い(입수소원)

정말 싫어요 모든 것이 싫어
-
오늘 밤이 지나면 이런 '사람이'
살아있을 수 있는 건 없어요
자 그럼, 죽여주세요



♪Tokyo jihen - 入水願い(입수소원)



모든 일이나 관계에서 객관적으로 현상을 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감정적인 판단이 그렇게 좋은 결과를 안겨줬던 때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이 있기에 동물이 아닌 인간인지라, 이렇게 이성적이게 보이려는 노력은 꽤 귀찮고, 어렵고, 힘들다. 


회사의 직원들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는 것 역시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사실 친하게 지내고픈 마음이 그렇게 없기도 하지만, 만에 하나 친해지게 되면 매정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순간, 쉬이 못하게 된다는 것도 크다. 그래서 누군가를 회사에서 직급이 아닌 다른 호칭으로 부르는 경우는 아직 손에 꼽는다. 그런 관계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 적당하다.  






하지만 나 역시도 그런 이성적인 판단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최근의 나는 타인이 휘두르는 그 이성적 판단의 잣대에 감정적으로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다. 사실 그런 것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에 대해 감정적인 답변을 내놓는 나를 바라보자니 헛헛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로남불이 따로 없어 정말. 


막상 내 눈 앞에,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닌 것처럼 다가오니 생각이 많아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변이 나에게 보내는 이런 메시지들에 어떤 오류가 있지 않은데,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지내던 찰나, 누군가와 이런 주제에 대해 길게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 역시나 상대방은 자신이 말하는 것들은 모두 이성적인 판단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고, 나는 거기에 대고 이 것도 싫고, 저것도 틀리고, 그리고 당신도 싫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보통은 에둘러 감정을 애써 숨기는 것이 대화의 상식인데 그 날은 쌓인 것이 터졌는지, 차분하게 말은 이어나갔지만 감정 투성이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밖으로 나와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그제야 내가 던질 말을 통해, 지금까지 불쾌한 이물감의 이유를 깨달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이고, 사람은 감정을 무시할 수 없는 생물이니,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모든 것에 감정을 빼고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이 없다. 는 사실이다. 그러니 마치 퍼즐 조각을 이리저리 맞추듯이 최선의 모양을 찾는 그런 이야기에 이유 모를 불쾌감을 느낀 걸 테다. 사람이 아닌 대우를 받아, 사람인 나는 기분이 나빴던 거다. 


그래,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데, 

사람인 우리는 얼마나 그 감정에 움직이겠나.  

아무리 애써 이성적인 척해봐야, 나 역시도 사람이었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 나에게 전하는 감정을 무시한 채 - 이성적인 판단만 들이밀었던 후회나, 옳다고 생각했던 세상의 일그러진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것을 고치려면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까 고민하다 보니 최근 이삼일간은 거의 눈을 붙이지도 못했다. 


좋아하는 게임에서도 종종 그럴 때가 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스킬이나 아이템 트리를 맞춰 키우거나, 몇 시간이나 열심히 진행했는데 막다른 길이거나 배드 엔딩의 루트라던가. 그럴 때는 여지없이 '로드' 나 '리셋' 버튼을 찾게 되는데, 애석하게 삶에는 그렇게 편리한 버튼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시작하는 것도, 새로 시작하는 것도, 중간부터 다시 하는 것도 모든 것이 힘들다. 그래서 '꾸역꾸역 죽지 못해 산다.'는 말도 있지 않나.   





     

너무 고민하다 보니 어제는 문득 이대로 죽어도 상관없지 않나 싶은 기분이 들었다. 요즘 들어 여러 번 느끼고 있지만 역시 익숙하지 않은 기분이다. 역겨움이 가시질 않아 구역질을 하고, 회사에서 급히 빠져나왔다. 이대로 있으면 정말 기분이 태도가 될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와 종일 누워 천장만 바라보다 보니 조금은 기분이 가라앉았고, 몇 가지 생각들을 해보았다. 평소에는 익숙하지 않은 감정적인 생각들이었다. 역시나, 죽기밖에 더 하겠나. 죽어버릴 듯한 기분이 계속 겹치니 비로소 살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스윽 하고 지나쳤던 문구 중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학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평소 같으면 그런 문구들을 떠올릴 일도 없는데, 다시 찾아보았다. 세계적으로 가장 이성적인 상을 받은 그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했더랬다. 그러니, 아마 지금의 나는 감정적이지만, 꽤 합리적일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 했다.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감정을 배제할 수 없다 
- 리처드 탈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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