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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Aug 09. 2019

읽히지 않는 글을 쓰는 글쟁이

♪곽푸른하늘 - 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

사실은 나, 난 말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요



♪곽푸른하늘 - 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


직업병이라 브런치의 방문자, 그러니까 업계 용어로는 UV / PV 같은 수치를 종종 확인해본다. 사실 확인할 필요도 없이 미비한 하루 30명에서 50명 정도의 수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그러니까. 직업병 탓이다. 이 곳에는 아직 스무 개의 이야기밖에 쓰지 않았지만, 대체로 거의 읽히지 않는, 서점 구석 진열대 아래서 두 번째에 있는 책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셈이다. 






" 야. 필자? 그건 읽히는 글을, 읽힐만한 쓰는 사람들이 붙이는 말이야. 그냥 글쟁이 정도가 어울려. 그러니까 우리 대부분은 글쟁이란 말이지. 고상하게 필자라니. " 


어릴 적, 이삼십 명 남짓한 관객이 모였던 공연이 끝난 뒤 뒤풀이 자리에서 조금 술을 마신 기자 선배가 자조적인 이야기를 뱉었다. 아마 그분의 기억엔 남아있지 않을 홍대 허름한 LP 펍의 술주정 정도였을 수도 있지만, 그의 말을 빌어 '글쟁이' 였던 나는 그 이후로 내가 써 내려가는 것의 대부분을 < 이야기 > 정도로 표현했다. 읽히지 못하는, 읽히기 어려운- 그런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 글쟁이 >를 그만두고 회사에 취직했다. 읽히지 않는 글을 쓰는 글쟁이는 이윽고, 배가 고파지기 때문이다.  






취직을 했던, 그리고 지금도 다니고 있는 곳은 온라인, 디지털 마케팅을 하는 회사다. 요즘에야 영상 위주로 돌아가는 세상이라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처음 일을 시작했던 시기엔 필연적으로 블로그 운영은 거쳐가야 하는 코스였다. 마케팅이라는 단어에 어울리게 읽히는 글을 썼다. 하루에 오천에서 만 명이 방문하는 블로그를 만들어냈고, 컨디션이 좋았던 때는 스무 개의 글을 쓰면 18개는 포털사이트 메인 어딘가에 장식이 되곤 했다. 지금 이 곳과는 사뭇 다른 숫자였고, 읽히는 글이었다. 

 

글이라고 부르기보단 '기술'에 가까웠던 것 같다. 세월이 지나 세상이 글보다는 영상이 팔리는 시대가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런 기술을 지금도 부리고 팔고 있었을 테고, 아마 그랬다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그만뒀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글이 뿌듯하진 않았었다.



저 인스타그램의 '...' 뒤로는 읽기도 힘든 글들이 나열되어있다. 누군가는 ' 누가 이런 긴 글을 읽어요!' 라며 웃었다. 나는 슬퍼졌지만.

  

세상이 변하게 되며 회사에서도 글을 쓰지 않아도 될 때부터, 개인적으로 일기 같은 시더분한 이야기들을 여기저기에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듬지 않은 채 무작성 써내려 가서 울퉁불퉁 못생긴 글 무더기였지만, 무언가를 쓴다는 행위는 알게 모르게 갈증을 해소해주는 무언가가 있어, 그저 끄적였다. 올해 지금껏 짧고 길게 쓴 이야기가 삼백 편에 가깝게 쌓였다. 대부분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에 잠들어 있거나, 혹은 이미 버려졌을 술집의 휴지조각에도 남겨졌다. 분명 나름은 많은 이야기들을 텍스트로 남기고 있지만 누군가에겐 '한 줄도 쓰지 않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읽히지 않았으니. 


브런치에 처음 가입할 때도,

헛웃음이 조금 났었다. 이 곳에서 활동하는 누구나 작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쓰고픈 글을 쓰는 곳인데, 그러기 위해선 심사를 받아야 하지 않나. 그러니까, 블로그를 닮은 이 플랫폼에서도 누구나 작가이지만 '아무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읽히는 글을 쓸 사람이 아니면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 같은 걸까. 그래서 신청할 때 말미에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굳이 사족으로 썼던 걸로 기억한다. 


"선정이 될 수 있다면 실무에서 익혀왔던 디지털 마케팅 관련 정보를 쓸 수도 있지만- (략)" 아이, 참 비굴하다. 






" 차라리 브이로그를 해. " 

무료한 요즘, 글쓰기가 취미라는 말에 차라리 브이로그를 하라며, 유튜브에서 잘하면 그건 용돈이라도 될 수 있다는 지인의 이야기는 그래서 조금 씁쓸하게 다가왔다. 취미생활마저 돈이 되어야 하는 건가. 뭐 그런 의미로 말한 건 아니겠지마는. 이러다 정말이지 세월이 더 지나면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글이 아닌 나와 같은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마저 없어질까. 언젠가 보았던 기사처럼 문학 소설도 AI 가 대신 써주는, 혹은 영화 < Her > 같이 내 감정이 담긴 편지마저 서비스로 사고파는 세상이 될까 싶어. 그전에 나라는 존재를 내 손으로 한 줄이라도 남기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며 쓴다. 




비록 그래, 

과거 누군가의 말처럼

글쟁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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