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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Aug 17. 2019

계절은 무심히, 심심하게 흐르고.

♪eunoo - 무인섬

아마 우린 다 외로이 있는 건 아닐까 해



♪eunoo - 무인섬


사알짝 구름이 드리운 것뿐인데 바깥 날씨가 한결 선선해졌다고 생각될 정도로 느껴져, 문득 머리를 자르러 가야겠다 싶었다. 주말 치고 평소보다 한산한 미용실이어서인지 선생님들이 입구에 옹기종기 모여계셨다. 다들 어디 놀러들 갔나. 매 달 머리를 잘라주시는 선생님도 오늘따라 한산하다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어떤 캐릭터로 자리 잡혔는지는 모르지만 보통 영화와 먹는 이야기를 주로 하는 편인데, 오늘은 조금 옆길로 새서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 - 뭐 이런 시국에, 동네에는 뭐뭐 - 나 남자 친구가 생기신 선생님 이야기도 잠깐 들었다. 






미용실은 마치 성당의 고해성사나 대나무 숲 같은 기분이라,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이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시시콜콜하게 적당히 떠들고플 때 찾아오면 좋은 곳인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찾았던 거지만. 몇 달 전에 했던 이야기도 기억해주시니, 저장된 게임을 로드해서 이어 대화하는 듯한 기분도 들고. 미용실은 그런 의미에서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꽤 재미진 곳이기도 하다. 


" 오늘 심심해서 좀 오래 붙잡았죠~"

별말씀을, 저야말로 심심했는걸요. 






미용실이 최고의 수다 장소일만큼, 역시나 주말은 심심하다. 구질구질한 표현이지만 인연이 있을 적에는 이런 심심하다는 걱정 없이 지냈던 것 같은데. 적어도 카톡이라도 하며 떠들 수 있잖아. 시간이 꽤 지난 지금, 많은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지만, 아무 일도 없는 주말의 이 허전함만큼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내가 어떻게 노력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니. 친구를 많이 만들었어야 해. 괜스레 억울한 맘으로 머리도 한 김에 동네에 있는 십오년지기 선배를 호출했다. 유부남인 선배인지라 조심했지만, 어쩔 수 없어. 만나주십셔. 형수님 죄송합니다!


다행히 급작스런 호출에도 나와준 선배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조카가 생겼다는 경사를 들었다. 축하하다는 인사를 나누며, 유부남에서 아빠가 될 선배의 걱정을 들었다. 올해 봄 짜잔 하고 결혼한 선배가 계절이 바뀌며 정말 가족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여전히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지만, 오늘 같은 주말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조금은 부러웠다. 그리고 아마 조카와 함께 좋은 동네 술친구는 아빠라는 이름으로 멀어지겠지 싶어 조금은 시원섭섭한 기분도 들었다. 




층층이 색진 나무가 1년을 모두 담고 있는 것만 같아, 꽤 오래 쳐다보았다. 


다행히, 선생님과 선배 덕분에 입에 거미줄 치는 것은 면한 채 돌아가는 길, 집 앞 화단의 나무가 끝자락에 빠알간색을 머금고 있었다. 앗차차 사실 우리는 지금 가을에 살고 있지. 문득 빨간 잎사귀를 바라보니 내가 이렇게 혼자 있는 계절이 한 바퀴를 훌쩍 돌았음을 문득 깨달았다. 머리를 잘라주는 선생님도, 선배의 이름도 아빠로 바뀌고 계절도 성큼성큼 바뀌는 동안. 내 주말은 여전히 심심하단 사실에 울음보단 웃음이 났다. 정말 집 앞 현관에서 하하하하하 다섯 번 정도 소리 내어 웃고, 현관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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