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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Aug 26. 2019

감히 사람을 평한다는 것은

♪김담소 - 미움받지 않는다는 것

미움받지 않는다는 거
세상 가장 어려운 얘기
모두에게 사랑받는 거
정말 어려워


♪김담소 - 미움받지 않는다는 것


일한 세월만큼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지시를 하고, 평가를 해야만 하는 위치에서 오늘도 하루를 보냈다. 착한 척을 하고픈 생각은 없지만, 정말 이런 역할은 언제나 고역이다. 일이 산더미처럼 쌓인 것보다도 한 명을 평가해야 하는 일이 훨씬, 정말이지 마음의 여기저기를 후벼 파는 기분이다. 그것이 칭찬이든, 비판이든. 어떤 마음이더라도 감히 내가? 누구에 대해 평가를 하는 거야. 






하지만 꼰대 같은 생각도 함께 자리 잡는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라는 말을 싫어한다. 세상은 어쩔 수 없이, 경험이나 실력 - 어쩌면 노력에 의해 층층이 쌓여진 곳이고 어느 한 층에 올라섰을 때, 그곳의 무게와 책임을 견디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조직도 세상의 축소판. 그런 모습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누구를 평가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지금 내가 올라선 '층에서 견뎌야 할 책임' 같은 것이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는 그만큼 책임을 지는 사람이 흐려지기 십상이다. 이상적이면서, 가장 위험한 발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몫만큼의 책임을 지려고 살지 않기 때문이다.  


꼰대는 그렇게 나에게 다가온다. 

평가는 어쩔 수 없이 층이 난 사회처럼 상.하적인 비교를 할 수밖에 없고, 그 기준은 대체적으로 '내'가 된다. '라떼는 말이야~' 같은 요즘 시쳇말이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을 막으려고 해도, 이런 주제의 이야기를 할 때면 멈칫하면서도 목 언저리까지 튀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들 살아온 세월만큼의 꼰대 감성은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덕목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지금의 나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 해지는 것도 사람들의 본능인지라, 이 정도면 나는 월급만큼의, 대가만큼의 가치 있는 사람이라 스스로를 미화한다. 분명 각자 개인의 노력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세상은 개인이 안고 있는 노고의 감정으로 평가받지 못하기에, 언제나 개인에게 내려지는 평가가 아쉬울 따름이다. 그 마음을 알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보다 낮은 평을 해야 하는 순간순간을 겪었다. 어쩌면 나를 한껏 미화한 채로. 






" 저는 열심히 했는걸요. " 

" 그건 당신의 역할의 전부가 아니어요."


오늘도 실제로 누군가에게 했던 말이다. 이 이야기에는 옳고 그름은 없었다. 그도 나름은 자신의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을 테고, 나는 그저 그의 노력은 지우고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그의 앞에 놓은 채 맡겨진 책임에 비해 역할을 모두 소화를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숫자로 이야기할 거면 컴퓨터가 대신해주는 게 더 나은 것 아닐까. 이 정도면 타인이 나를 '공능제(공감능력제로)'라고 봐도 이상할 게 없지 않나. 어쩌면 오늘의 누군가는 나를 이미 그렇게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층에서 보는 세상은 다를 수밖에 없기에 모두를 올바르게 평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 노력하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상사를 원망하고, 후임을 질책하며, 동료를 순수하게만은 쳐다보기 힘든, 안타까운 세상에 산다. 어쩌면 그냥 내가 부족하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누군가를 평하는 일만큼 무겁고, 책임감이 필요한 일도 세상에는 드문 것 같다. 어깨에 감히, 평한 사람들의 무게만큼이 얹어진 듯한 저녁이다. 


모두에게 사랑받은 생각은 없지만 

이렇게 원치 않는 마음과 일로,

미움을 받는 건 역시나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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