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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Sep 04. 2019

힘들었던 기억은 영웅담이 되어

♪offonoff - overthinking

때론 아는 것들이 더 괴롭혀


♪offonoff - overthinking



"라떼는 말이야~"

꼰대의 대표어 같은 이야기로 농담 따먹기를 했다. 사실, 과거를 소환하는 것은 꼰대와는 관계없이 누구나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도구 중 하나이다. 나이가 많고, 윗사람이라는 이유로 과거의 경험을 그저 구시대적인 발상이고 잔소리라 여겨지는 세상은 조금 불편하긴 하다. 반대 입장에서 과거의 이야기를 하면 이 시선은 조금 달라진다. 그런 이야기다. 


얼마 전, 퇴사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이 어떤 마음이었고, 상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풀어나간 과거 퇴사 스토리는 일종의 영웅담과 같았다. 새벽까지 몰아치는 업무를 이겨내고,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주변인들의 눈살, 불합리함에 맞서 싸우다 무너질 때도 있었지만 다시금 도전하는 정신! 몇 번의 도전과 시도 끝에 찾은 새로운 땅에서 비로소 자신은 행복해졌다는 해피엔딩과 같은 이야기였다. 







소개에도 있지만 나는 아직 이직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내가 아마 다른 곳에 갈 정도의 영웅도 아니고, 잘난 것도 아니기 때문일 테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있는 회사가, 조직이 너무나도 좋고 너무 완벽한 짜임새를 갖춘 곳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 곳에 있으면서  위와 같은 '영웅'들이 떠나는 모습들을 많이 보았고, 생각보다 좁은 바닥인 이 곳에서 많은 영웅들이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영웅담을 쓰고 떠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 이야기 역시 그런 과정에서 전해 들었다. 


이런 영웅담들은 대체로 상대역이 악역으로 나온다. 당연하지만 영웅은 필연적으로 악의 무리를 물리치는 역할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들이 모두 거짓은 아니지만 극적인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얼마 전 건너 들었던, 나와 연관되었던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면, 이런 식이다. 




그 사람에게 있어 나는 자신의 아픔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몰지각한 사람이었다. 그것이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부분이거나- 어떤 부분도 이해하지 않고, '뭐 죽을 건 아니잖아. 일해!'라고 말하는 골초 악덕업자 같은 느낌? 그렇게 표현된 나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조금은 웃었다. 그때도, 지금도 연초는 끊었는걸 :D 


그 이야기에는 그 영웅과 함께한 스트레스로 울었던 동료'들'의 이야기도, 그(녀)가 매번 고집하던 이상한 방향의 노력 때문에 나머지가 뒤치다꺼리를 위해 다 같이 지새운 수많은 밤의 이야기들도, 영웅은 늦게 등장하는 것과 닮은 일상적인 늦은 출근부터, 시시 때때 자리에서 사라져 찾아다녀야 했던 신출귀몰한 이야기 등. 더 다이내믹했던 이야기들이 빠져있었다. 그런 이야기가 덜어지고 나니 그 사람을 둘러싼, 남아있는 사람들은 악역이 되어있었다. 




이제는 별 상관없을 사람, 궁금하지도 않던 사람이 영웅이 되어 나에게 돌아옴에 놀랍기도 했고, 이렇게 쉽게 영웅이 될 수 있는 세상인 것이 신기했다. 좁기도 하지 정말. 무엇보다 저 위의 한 문단의 이야기만으로 영웅이 되고 싶었던 사람을 악역으로 만들 수 있음에 무서웠다. 그 사람은, 지금의 나는 서로의 무엇을 보았고, 알기에 그렇게 말과, 글자로 떠들었고, 떠들까. 서로를 악이라 칭할까. 






이렇듯 우리 모두는 과거의 이야기로 아주 손쉽게도, 모두에게 영웅이 될 수도 악역이 될 수도 있다. 현대 사회에서 한 마디에 꼰대가 될 수도, 깨어있는 사회인이 될 수도 있다. 그 역할을 만드는 것은 온전히 나 자신이 노력해서 이루어질 수는 없는 일이구나, 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힘든 과거 속에서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끄집어내어 누군가는 영웅이, 멋진 사회인이 되고, 누군가는 악역이, 꼰대가 되는 세상이라니. 좀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걸 보면, 



난 아마 꼰대인가 보다. 

그래서, 그런 영웅이 되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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