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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Sep 07. 2019

태풍이 몰아치는 날은 고요하다.

♪fox capture plan - butterlfy effect

♪fox capture plan - butterlfy effect : 정말 좋아하는 재즈 밴드. 오늘 같은 날씨와도 어울린다. 



내 체질 중 하나를 설명하는데 자주 쓰는 하나로, 네이버 웹툰에서 인기 있었던 가스파드 작가님의 < 선천적 얼간이들 > 중, 비가 오는 날에는 몸이 몹시 아파오는 작가님의 일상을 재미있게 표현한 에피소드가 있다. 웃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 나 역시도 어릴 적엔 비만 오면 몸살과 비슷하게 몸이 욱신거려와,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정말이지 웃픈 에피소드다. 


- 비가 와서 나가지 못하겠어...

이런 체질은, 당시 혼자 있기 좋아했던 나에게는 힘들면서도, 힘이 되어줬다. 아프다는 핑계로 많은 약속을 취소했었다. 뭐, 언젠가는 만날 텐데 굳이. 침대 위에서 끙끙거리며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생각을 하며 혼자 있을 수 있게 됨에 편안해졌던 것 같다. 






이런 체질과는 관계 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을 해야 하는 월급쟁이가 된 이후에는 강제로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되었고, 자연스레 아픈 것도 익숙해지다 못해 나아졌다. 역시 인간의 생존본능은 무시할 것이 못 된다. 여전히 심하게 나쁜 날씨에는 욱신거림은 어쩔 수 없지만,  오늘같이 창문이 덜컹거릴 정도의 태풍에서도 크게 문제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아졌다.

 

" 아버지, 이 태풍에 어디 나가세요. " 

" 친구들 만나러 간다. " 


이 날씨에 한 달에 한 번 씩 있는 정기 모임에 나가신다는 아버지를 배웅해드리고, 덜컹거리는 창문 소리가 거슬려서 중간의 방음창을 닫고 에어컨을 틀어두었다. 이제 여름도 확연하게 태풍과 함께 지나가는 중인지 막혀 있는 집안이 그렇게 덥진 않아 리모컨의 설정을 냉방에서 제습으로 바꾸었다. 이중으로 닫힌 창문 밖을 바라보니 15층의 우리 집 앞으로 부유물이 날아다니고, 나무가 한쪽 방향으로 휘어있는 바깥 풍경이 보였다. 실내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실감은 안 났지만.  


풍경과는 반대로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 고요하게 들리는 집이 적적해서, 음악을 틀어두었다. 문득, 어릴 적 비 오는 날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나도 이런 태풍이 몰아치는 날, 


"나와! 놀게." 

라며, 그 날처럼 권해주는 친구가 있었을까 싶었다. 이제는 나도 나갈 수 있는데. 






어머니의 걱정에 생각보다 일찍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께서 투덜거리시면서도, 이제 백발이 익숙해진 친구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라며, 보여주셨다. 사진 속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분들은 태풍 속에서 찍은 사진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고요하고, 웃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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