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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Sep 18. 2019

말없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리더십

♪서태지 - T'ikT'ak

T'IKT'AK
뚜렷한 가치를 담지 못한
너의 텅 빈 brain


♪서태지 - T'ikT'ak ( Symphony ver. )


겉보기와 어울리지 않는 취미 중 하나를 꼽자면 오케스트라 공연 감상이 있다. 전통 클래식에 조예가 깊진 못하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오케스트라로 커버업 했거나, 아티스트와 협연한 공연을 즐겨 찾고 본다. ( 위 영상의 콘서트도 직접 보고 왔었더랬다. )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내는 화음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이러한 취미를 가지게 된 계기는 그들의 앞에서 음악을 이끄는 지휘자라는 역할에 반했기 때문이고, 또 그 계기는 초등학교 때 어설프나마 학생들 앞에서 지휘를 했던 경험 덕분이다. 






지금도 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학교 음악 시간에 지휘법을 배우는 기회가 있었고, 마침 우리는 반 전체가 리코더 합주를 하는 반이었다. 당시 리코더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도, 10만 원 상당의 리코더가 있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리코더를 쥔 10대 꼬맹이들 앞에서 지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지휘자는 피곤했다.

파트 내 불협화음이 나는 부분을 잡아내어, 한 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파트별로 어울릴 수 있도록 조율을 해야 한다. 그제야 하나의 음악이 완성된다. 하지만, 겨우 손을 휘적거리는 것을 갓배운 초등학생이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는 없었고, 내 지휘는 교내 장기자랑 때 데코레이션 같은 느낌으로 끝났던 기억이 있다. 다들 외웠던 대로 박자에 맞춰 눌렀고 나는 그저 지휘봉을 흔들었을 뿐이다. 놀랍게도 선생님이 단상에 섰을 땐, 당시 시 대회에까지 나갈 수준이 되었다. 지휘자의 역할에 반했던 순간이다. 






공연을 가만히 보고, 듣자 보면 지휘자는 말없이 손을 휘젓는다. 음악의 강약에 맞춰 격정적인 몸짓과 표정으로 몇십 명의 연주자를 움직이고, 이내 음악이 되는 장면은 매번 볼 때마다 경이롭기까지 하다. 아마, 그 지휘자는 그 과정까지 앞에 있는 몇십 명의 연주자들과 엄청난 말과 감정을 쏟아냈을 것이다. 마치 영화 < 위플래쉬 >의 지휘자이자 교수인 플레쳐처럼 말이다. 






세월이 지나, 그 정도 규모의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지금, 그때의 어린이와 지금의 내가 무엇이 변했나 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여느 집단이나 그렇지만 잡음은 있겠고, 아름다운 음악 대신 숫자로 새겨진 성과들로 표현되는 차이 정도겠다. 


천성적인 성격상( 안다. 핑계다. ), 많이들 이야기하는 '소통하는 조직'을 만들기엔 내가 어울리진 않고 부족함 투성이라, 아등바등 말없이 곡을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닮아보려고 하지만 역시나 쉽지 않다. 각자를 하나로 합치는 법에 아직 미숙하고, 지휘자의 감정은 곧 음악이 되지만, 내가 감정을 보이면 조직에 해가 된다. 감사하게 그럼에도 조직은 굴러간다. 마치, 각자 악보에 맞춰 연주했던 그때의 연주회처럼. 이러면 그냥 누군가 서야 해서 섰던 그 날의 나와 다를 것이 없지 않나.






지금의 내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닮은 거라곤 그래서 그저, 말이 없는 것뿐이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지휘자와, 말을 할 수 없는 나를 비교하며 미안한 마음에 오늘도 멍하니, 먹먹하게, 말없이 여러 오케스트라의 공연들을 부럽게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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