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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Oct 08. 2019

마음을 내려놓은 지 1년 후 이야기.

♪Hakubi - 光芒

살아가는데 서툰 채로
미래를 상상하며
-
우리가 그린 지도가 사라져도
그저 살아가는 거야.



♪Hakubi - 光芒(광망, 빛살의 끝 ) 


작년 오늘은 나름 가장 긴 여행을 갔다 돌아온 날이었다. 일주일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목적 없이 흘러가듯 일본 지방의 여기저기를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때였고, 당시의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몇 년간 잘 일구었다고 생각했던 팀이 처음으로 무너지는 것을 느꼈던 때이고, 믿었던 사람들마저 내 곁을 하나하나 떠나갔던 그런 시기였다. 사실 고하자면, 출발 전 날 사직서를 쓰고 짐 한 켠에 넣어놓은 채 떠났던 여행이었다. 일도, 사람도 모두 놓고픈 마음이었다. 


여행마다 간단하게 일기장에 소감을 적어놓고는 하는데, 이 나름 특별했던 여행의 끝에 써놓았던 이야기는 이러했다.





'여러 가지의 미래를 상상하며 내일의 모습을 그리며 걸어봤지만 마지막 날까지도 떠오르는 것은 지금과 변함없는 삶이었다. 사람들이 어딘가로 떠난 시간, 공항 카운터에 남아 무언가를 찍는 촬영팀의 모습처럼.' 
'그래도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작고 초라한 내일의 모습을 그려보고 나니 오히려 개운해진 기분이었다. 그래, 무엇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말이야. 차라리 마음에 담긴 모든 걸 내려놓은 채 살아도 괜찮겠어. 마음이라도 가벼웠으면 해.라는 역시 애매한 문장이 떠올랐다. 아직은 마음에 담긴 것이 많은 탓이겠다. 내려놓고 살다 보면 정말 초라하고 괜찮은 삶일 테야.'  




그러니까, 온갖 마음을 내려놓겠다며 결심한 지 꼭 1년이 되었다. 마침 그 날 기록한 날처럼 오늘 서울 하늘은 맑고 살짝 서늘했다. 상상한 대로 세상은 크게 변한 것 없이 여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여전히 좌충우돌 일을 보고 있고, 팀은 1년 뒤인 오늘도 위태위태한 순간을 넘어가고 있으며, 주변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는 그런 세상이다. 어쩜 이렇게 상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재미없는 삶이니. 나름은 이런 세상에서 마음을 내려놓겠다는 마음을 잊지 않은 채 살고 있는데, 세상은 그대로이니, 무엇이 변했는지 깨닫기가 내 마음인데도 여간  쉽지 않았다. 




 


회사의 면접 기간이라 면접관으로 이런저런 지원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는데, 한 지원자 분께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 힘든 업종이라고 하는데, 오래 일할 수 있는 원동력 같은 것이 있을까요? " 그때 대답을 했던 내 표정을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웃으며 대답했던 것 같다. 아마 1년이 지나 변한, 오늘의 나의 모습을 대변한 답이기도 한 것 같아 웃었던 것 같다. 


" 조금은 슬픈 말이지만, 그런 힘든 감정들과 일을 계속 겪으면서 조금씩 의연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어떻게든 앞으로 가는 것 같아요. 쌓아온 것들을 버릴 수는 없으니까. 쌓아온 길을 계속 밟으면서 가는 거죠. 결국은 괜찮아지고, 앞으로 가는 거니까 정말 괜찮은 것 같기도 합니다. "       






대답을 마치고 잠시 쉬는 시간 다시금 대답을 떠올려보니, 내려놓은 줄 알았던 마음들이 발 밑에 너저분히 흩어져있었다. 1년 전 기록처럼 정말이지 초라하고 괜찮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 작년 이맘때 즈음엔 이런 삶에 슬퍼했을 테지. 지금은 슬프진 않다. 어느 삶이 더 나은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 이렇게 사는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저 살아감에 감사해야지. 괜찮다 나는. 정말이지. 괜찮다.

적어도 그 때처럼 사직서는 품고 있지 않으니까. 


心を無くせば 
弱さを隠せば
強くなれる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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