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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Nov 10. 2019

남긴다고 해서 남는 건 아니니까

♪Heize - 비도 오고 그래서

어차피 이 밤이
다 지나가면은 별 수도 없이
난 또 한 동안은 널 잊고 살 테니까
내 가슴속에만 품고 살아갈 테니까



♪Heize - 비도 오고 그래서


얼마 전 물에 빠진 스마트폰을 바꾸러 휴대폰 샵을 찾았다. 사실 조금 더 고장 나지 않았더라면 오래 쓸 요량이었던 폰이었고, 요즘 기기는 기능이 좋아 방수도 잘 되어 아무 이상도 없거니와 겉으로도 흠집도 거의 없이 잘 관리해왔던지라 꽤 아깝긴 했지만, 마음을 먹은 김에 바꾸기로 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사는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꽤 아날로그스럽고, 스마트하지 못해서 항상 기기를 바꿀 때는 통신사 공식 대리점을 찾아간다. 다들 테크노마트를 집 앞에 두고서 그런다고 핀잔을 주었지만 뭐 어떠랴. 더 값싼 폰을 찾으러 다니기보단, 어서 바꾸고픈 마음이 더 컸을 뿐이다.  





 

" 어떤 것들을 옮겨드릴까요? " 

꽤 빠르게 개통과 기기 변경이 진행되었다. 자료를 옮겨준다는 직원의 말에 순간 고민을 했다. 어떤 걸 옮기지? 순간 2년이 조금 넘게 사용한 내 스마트폰에 들어가 있는 것들이 떠오르지 않아 다시 돌려받고 잠깐 둘러보았다. 지난 스마트폰부터 이어오던 이런저런 것들이 폰에 가득 담겨 있었다. 256기가 중에 200기가 정도 차지한, 그런 파일들이었고, 어쩌면 기억들이었다.  


" 그냥 전화번호부랑 어플 정도만 옮겨주세요. " 






많은 자료를 요청하지 않으니 금방 이전이 끝났다. 지난번엔 꽤 시간이 걸렸던 것 같은데. 지금 쓰던 폰을 반납하면 납입 요금을 더 할인해준다, 파일을 옮기시고 다음 주까지 가져오셔도 된다는 직원의 권유를 받았다. 다시 한번 받아 든 예전 폰을 들여다보았다. 몇십 기가가 넘는 사진첩 용량을 보다 초기화 버튼을 누르고 직원에게 건네주었다. 어떤 것들이 있었더라. 뭐 사실 이제 와서 중요할 것도 아닌 이야기일 것이다.  이런저런 핑계로 미련하게 쥐고 있던 기억들도 그렇게 정리했다. 사실, 조금 더 힘낼 수 있었더라면 조금 더 오래 간직할 요량이었다. 기억을 발라내며 정리하기엔 엉기고 엉겨, 통째로 버렸다.  






통신사에서 새로 나온 스트리밍 서비스가 공짜라는 안내를 받고 멜론을 켜보니 LTE에서 5G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서비스가 끊겼다는 알람이 나왔다. 꽤 많은 숫자의 플레이리스트가 있었다. 아마 어떤 감정일 때마다, 어떤 기념을 위하여 모아두었던 그런 음악들의 집합체 들일 테다. 꽤 긴 시간 동안 모아두었던 플레이리스트도 삭제하고, 새로이 무료로 제공한다던 서비스에 삼사십 곡 정도의 곡을 생각 없이 누르고 플레이리스트로 저장해 두었다. 자고 싶어, 라는 이름으로 저장해두었다. 


그렇게 또 현실에서 이것저것 차마 쳐다보지 못했던, 않던 것들을 핑계 삼아 털어냈다. 가득 차려던 폰의 용량도 200기가나 남았지 뭐야. 이러다 보면, 모두 다 털어내고 정말로 혼자구나 라고 느낄 날도 멀지 않았겠지 싶어서, 오늘은 새삼 추웠다. 비가 온단다. 새삼 추억은 없고 기억만 남았다는 사실에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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