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ze - 비도 오고 그래서
어차피 이 밤이
다 지나가면은 별 수도 없이
난 또 한 동안은 널 잊고 살 테니까
내 가슴속에만 품고 살아갈 테니까
얼마 전 물에 빠진 스마트폰을 바꾸러 휴대폰 샵을 찾았다. 사실 조금 더 고장 나지 않았더라면 오래 쓸 요량이었던 폰이었고, 요즘 기기는 기능이 좋아 방수도 잘 되어 아무 이상도 없거니와 겉으로도 흠집도 거의 없이 잘 관리해왔던지라 꽤 아깝긴 했지만, 마음을 먹은 김에 바꾸기로 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사는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꽤 아날로그스럽고, 스마트하지 못해서 항상 기기를 바꿀 때는 통신사 공식 대리점을 찾아간다. 다들 테크노마트를 집 앞에 두고서 그런다고 핀잔을 주었지만 뭐 어떠랴. 더 값싼 폰을 찾으러 다니기보단, 어서 바꾸고픈 마음이 더 컸을 뿐이다.
꽤 빠르게 개통과 기기 변경이 진행되었다. 자료를 옮겨준다는 직원의 말에 순간 고민을 했다. 어떤 걸 옮기지? 순간 2년이 조금 넘게 사용한 내 스마트폰에 들어가 있는 것들이 떠오르지 않아 다시 돌려받고 잠깐 둘러보았다. 지난 스마트폰부터 이어오던 이런저런 것들이 폰에 가득 담겨 있었다. 256기가 중에 200기가 정도 차지한, 그런 파일들이었고, 어쩌면 기억들이었다.
많은 자료를 요청하지 않으니 금방 이전이 끝났다. 지난번엔 꽤 시간이 걸렸던 것 같은데. 지금 쓰던 폰을 반납하면 납입 요금을 더 할인해준다, 파일을 옮기시고 다음 주까지 가져오셔도 된다는 직원의 권유를 받았다. 다시 한번 받아 든 예전 폰을 들여다보았다. 몇십 기가가 넘는 사진첩 용량을 보다 초기화 버튼을 누르고 직원에게 건네주었다. 어떤 것들이 있었더라. 뭐 사실 이제 와서 중요할 것도 아닌 이야기일 것이다. 이런저런 핑계로 미련하게 쥐고 있던 기억들도 그렇게 정리했다. 사실, 조금 더 힘낼 수 있었더라면 조금 더 오래 간직할 요량이었다. 기억을 발라내며 정리하기엔 엉기고 엉겨, 통째로 버렸다.
통신사에서 새로 나온 스트리밍 서비스가 공짜라는 안내를 받고 멜론을 켜보니 LTE에서 5G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서비스가 끊겼다는 알람이 나왔다. 꽤 많은 숫자의 플레이리스트가 있었다. 아마 어떤 감정일 때마다, 어떤 기념을 위하여 모아두었던 그런 음악들의 집합체 들일 테다. 꽤 긴 시간 동안 모아두었던 플레이리스트도 삭제하고, 새로이 무료로 제공한다던 서비스에 삼사십 곡 정도의 곡을 생각 없이 누르고 플레이리스트로 저장해 두었다. 자고 싶어, 라는 이름으로 저장해두었다.
그렇게 또 현실에서 이것저것 차마 쳐다보지 못했던, 않던 것들을 핑계 삼아 털어냈다. 가득 차려던 폰의 용량도 200기가나 남았지 뭐야. 이러다 보면, 모두 다 털어내고 정말로 혼자구나 라고 느낄 날도 멀지 않았겠지 싶어서, 오늘은 새삼 추웠다. 비가 온단다. 새삼 추억은 없고 기억만 남았다는 사실에 웃음이 났다.